우린 진짜 뱅크시를 본 적이 없다. 원본과 위작의 경계가 무의미한 작가
뱅크시는 아마도 21세기 현대미술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자, 동시에 가장 불확실한 예술가입니다. 정체를 숨긴 채 전 세계 도시의 거리 위에 강력한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스텐실 그래피티를 남긴 이 익명의 작가는, 제도권 예술을 비판하며 부정했지만 지금은 그 제도권의 한복판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아이러니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술관이나 전시회, 경매장에서 마주치는 뱅크시 작품들… 그게 과연 ‘진짜 뱅크시’일까요?
"그건 내 작품이 아니다" – 뱅크시의 공식 입장
뱅크시는 여러 차례 본인의 입으로 전시회를 부정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2018년 LA 전시 ‘The Art of Banksy’에 대해 “내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언급
- 뱅크시의 공식 웹사이트(www.banksy.co.uk)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올라와 있습니다:
“미술관, 전시회, 출판 등 내 이름을 이용하지만 내가 참여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난 상업적 활동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흔히 보는 갤러리나 해외 투어 전시의 대다수는 그의 인증을 받지 않은 것들, 심지어 그는 그런 전시를 “가짜(fake)”라고 칭한 적도 있습니다.
🖼️ 파쇄된 ‘풍선을 든 소녀’가 유일한 공식 회화 작품?
뱅크시가 회화 작품을 낙찰 즉시 파쇄한 〈Love is in the Bin〉(2018) 은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상징적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낙찰된 순간 캔버스 하단에 숨겨진 파쇄 장치가 작동했고, ‘풍선을 든 소녀’의 절반이 잘려 나갔습니다. 이 행위는 곧 **“작품의 제도권화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됐고, 오히려 이 파쇄된 작품은 오히려 더 높은 가치(약 250억 원 상당)로 재낙찰되었죠.
이 사건은 단지 퍼포먼스가 아니었습니다. 뱅크시가 **“나의 회화는 이것 하나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현재 존재하는 뱅크시의 다른 ‘캔버스 회화’들은 진위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 그 외의 그림들은? – 진위도, 원본도 불명
뱅크시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거리의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입니다. ‘꽃을 던지는 청년’, ‘풍선을 든 소녀’, ‘팔레스타인 벽화’ 등은 모두 도심 거리 한복판, 거대한 벽면, 공공공간에 작업된 것들입니다. 그의 방식은 **스텐실 기법 + 장소성(비판의 맥락)**이며, 이는 갤러리나 캔버스 속으로 들어가며 의미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시되고 판매되는 작품들은?
- 대부분은 뱅크시의 그래피티를 디지털로 복제한 프린트이거나,
- 사설 단체(Pest Control 등을 자칭하는 곳)에 의해 “인증”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작품들이며,
- 일부는 그가 과거 제작에 관여했다고 알려진 스크린프린트의 재인쇄본들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 보는 캔버스 그림들은 위작, 복제품, 또는 진위 미상 작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뱅크시가 직접 **“그건 내가 만든 게 아니다”**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내가 죽기 전 말하겠다” – 예술의 자기파괴 선언?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뱅크시는 아직 살아 있고, 언제든지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작가입니다.
그가 언젠가 “벽에 그린 그래피티 외에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공식 선언해버린다면?
- 지금까지 거래된 수천 점의 ‘뱅크시 작품’은 전부 무가치한 가짜가 됩니다.
- 그동안 수집가와 경매사는 수백억 원 규모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 예술 시장 자체가 작가의 정체성과 발언 하나에 무너지는 허약한 구조임이 드러납니다.
뱅크시는 이를 알기에 의도적으로 진위 논란을 조장하고 있으며, 그 누구에게도 완전한 진짜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뱅크시가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이자, 예술의 자살 버튼을 언제든 누를 수 있는 존재인 이유입니다.
정리하자면…
구분 진품일 가능성 비고
벽에 그린 그래피티 | ★★★★★ | 유일하게 인정되는 ‘원본’ |
파쇄된 캔버스 (Love is in the Bin) | ★★★★★ | 본인 확인, 경매 포함 |
전시 그림, 캔버스 작품들 | ★★☆☆☆ | 대부분 복제품, 진위 불명 |
프린트, 굿즈 등 | ★☆☆☆☆ | 라이선스 및 위작 난립 |
공식 전시회 | ☆☆☆☆☆ | 뱅크시가 부정한 경우 많음 |
뱅크시의 작품은 ‘누가 그렸는가’라는 고전적 작가 중심주의를 부정합니다.
그가 죽기 직전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전 세계 수천 점의 작품 가치가 증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뱅크시는 예술계에서 가장 불확실하지만,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진위보다도 질문을 던지는 힘, 제도에 대한 조롱, 그리고 예술에 대한 불신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뱅크시가 아직도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관련 자료
- Banksy 공식 웹사이트
- Sotheby’s, 〈Love is in the Bin〉 파쇄 경매 사건 보도 (2018)
- The Guardian, “Banksy says new exhibitions are fake” (2023)
- BBC Documentary: The Banksy Job, The Story of Ban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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