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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구원받지 못한 한국의 종교 현실

by GhostJiN 2010.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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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에는 인천과 광명시 안양시등 타 시도가 포함되게 표시됐지만 검색시에는 별도로 서울시로만 검색된 숫자임을 알려드립니다. 오히려 실제 서울시 보다 작게 잡아서 검색한 수이기에 실제보다 적은숫자임을 알려드립니다.)

이것은 서울의 지도다. 그렇다면 이 점들은 뭘까요? 나타난 점의 숫자는 검색된 숫자만 7천2백개로 표시된다.

다름 아닌 교회를 표시하는 점들이다. 지도 검색 업체에 등록된 교회가 전체중 50%정도만 되어있다고 하니 대략 서울시 안에는 적어도 14,400곳 이상에 교회가 세워져있다. 

서울 총면적은 605.33㎢ 인것을 미뤄본다면 서울속의 교회 밀도는   23교회/ 로 나타난다.
반경 500미터 안에 교회가 무려 23곳 이상 존재한다.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어두운 밤 아파트 옥상에 올라서 도심을 내려다 보면 대충 신뢰가 갈것이다. 온천지가 붉은 십자가로 덮여있다.

 
이번 지도는 절이 표시된 것이다. 850여 사찰이 검색되었다. 불교의 특성상 전국 명승지나 지방의 산속 암자를 근거로 종교 활동을 하다보니 도심에서는 그수가 적게 나타나지만 요즘 현대식 오피스텔이나 빌딩 건물에 들어선 사찰부터 일반 가정집 주택형태로 종파가 아닌 개인이 주지로서 운영하는 사찰까지 합친다면 교회못지 않은 숫자가 있을것이다.  대충 검색된 자료로만 봤을때 사찰 밀도는 1.4 사찰/로써  반경 500미터 이내에 사찰이 1~2곳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실제 검색된 숫자보다 작게 잡아  5배 이상으로 존재 할꺼라 본다면  7사찰/㎢   정도로 볼수 있을듯하다.


다음은 천주교 성당이다. 609개로 검색되는데 대체로 정확할꺼라 본다. 성당의 경우 교황청의 엄격한 검열을 통과해야지만 세울수있는데다 왠만히 신도가 많은 동이 아닌 이상 한 동에 하나의 성당만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볼때 성당의 밀도는 1성당/㎢ 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대해 편견을 가진건 아니지만 솔직히 우리 곁에 종교 관련 건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아무리 종교적 신념이 숭고한것이라고 하지만 이쯤되면 종교단체가 아니라 영업을 하는 사업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불교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개신교 교회들이다.
어찌 똑같은 신을 믿으면서 이리도 종파가 많고 교회가 많단말인가....
일정 지역안에 신도는 한정되어있는 반면에 교회는 끊임없이 난립하고있다.
더욱이 문제가 발생시 중재를 담당할 종파나 교구같은 공통 분모가 부족하다보니 화합하기 보다 경쟁 상대처럼 서로를 마주하기 일쑤인게 현실이다.


또한 종파에서 건립하는 교회보다는 개인이 세우는 교회가 많다보니 별다른 제재를 받지않고 있다는것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개인적 교회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각 종교단체는 국가적으로 다양한 세금면제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악용하여 사적인 재산축적의 한 방편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고  금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 사이비교단으로 전락할수있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게 되어있다.

이런면에서 개신교보다는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천주교가 바른길을 제시하고 있는듯하다.
천주교는 하나의 강력한 지도자 아래 엄격한 종교적 감시와 규제를 기반으로 종교단체가 부패하거나 타락하지 않을수있도록 지도하고, 신도들은 신앙적 생활에만 전념할수있도록 지역적 안락함을 배려하는 정책을 유지하기위해서  필요이상 성당을 늘리지 않는 바른 운영을 하고있고 이것은 천주교의 오랜 전통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이런것이 진정한 종교단체가 아닐런지....



참고로 서울시내에서 가장 성업중인 업소인 pc방을 검색해 봤는데 충격적인 결론이 나왔다.
교회의 숫자가 동네 pc방보다 많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pc방이 더 많을수도 있지만 지도로 검색해 보면 알수있듯이 pc방은 주택가 보다는 번화가나 대학가에 집중화 되어있기에 그 수가 많아 보일뿐 실질적으로 전체 영업장 숫자는 그리 많은게 아니라는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동종업체 간에 영업이익이 겹쳐지는 출혈 경쟁지역은 최소화시키면서 입지를 선정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교회는 경영학적인 판단에서 초기 설립시 입지 파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입점하는 것이므로 어쩔수없이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어있다. 이러한 배경에서는 자연스레 쌍방간 신경전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노출될수밖에 없고 그결과 보다 많은 신도들을 흡수하기위해 과도한 전도행위를 요구 할수밖에 없게 된다.

솔직한 심정으로 왜 교회가 이렇게 많이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같은 성경책을 지니고 있는것만으로 이미 한 형제고 자매인데도 결국은 따로 국밥처럼 같은 동네에서 다른 교회를 다닌다.
한집에 사는 가족이 밥상을 따로해서 식사하는 격이다.
교회에서는 항상 화합하고 사랑하라지만 생활속에서 이렇게 분열되고 흩어져서 서로간에 담을쌓아 스스로 고립을 자초할뿐만 아니라 타인과 불화를 가져오는 행태를 일삼고 있는데 도대체 전도 대상자들의 가슴에 그 진정성이 와닿겠는가?

진정한 교인이라면 왜 자신만의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존재하고자 하는가?
자신이 소유한 모든것을 내려놓고 하나의 국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한 동네에 하나의 교회로 통합하여 동네 전체 주민이 화합하고 사랑하는 그런 지역융화적 교회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자신의 것보다는 모두의 것이 더 소중하지 않은가!  지금 당장 길건너편 혹은 옆건물의 교회와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보자고 할 용기있는 진정한 목회자가 있을까?

종교는 이익보다는 화합과 평화가 더 큰 가치이며 목표다. 개인의 평안과 신에 대한 무한한 감사로 끝을 맺어야한다. 개인의 허황된 소원이나 빌고 개인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거나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교우관계를 넓히기 위한 사교장으로써의 목적이 최우선이 되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뒤돌아보고 채찍질하면서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서 신을 향해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는 양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이런것은 뒷전에 두고 자신의 안위나 빌고 있을꺼라면 조선시대때 뒷마당 장독대 위에 정한수 퍼놓고 달님이나 삼신 할머니께 지극정성 두손모아 소원비는토착 신앙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볼일이다. 오히려 삼신할매나 달님별님 보다 영험하기에 교회를 가는건 아닌가?

또한 비대한 몸집을 과시하듯이 종교단체의 집회장을 성전이라는 미명하에 하나의 성곽이나 궁전처럼 과대 포장하는것도 보기 좋지만은 않다. 어떤 종교단체에 가보면 식당이 호텔부페식당보다 좋게 만들어 둔곳도 있다. 이용하는 신자들이 좋기는 하지만 사회적 봉사와 희생을 미덕으로 알아야 할 곳에 금은 비단으로 치장하고 있다면 권위보다는 비난을 받게 되는게 사실이다.



지금 당장 내 이웃 중에 헐벗고 굶주리는 자들의 슬픔을 함께하고 그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집회에 나오지 못한자와 편히 앉아서 기도나 하는자 중에 누가 천국이나 극락으로 갈지 뻔한 이치가 아닐까?

신에 대한 끊임없는 광신적 찬양과 거짓된 눈물만이 천국행 티켓을 보장한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운일이다. 테레사 수녀같이 희생하고 봉사하는자와 나이팅게일 처럼 아픈자를 긍율히 여기며 구제하고자 노력하고 희생하는 가운데 인간으로써 고뇌하고 아파하는 자만이 진정한 종교인이 아닌가! 천국이나 극락에 들어갈자는 가식된 가면을 쓰고 허영의 이름 아래 자신을 과장되게 꾸미는 자가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는 아픔을 알기에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청렴하고 소탈한 사람의 정을 중시하는 그런 사람이 선택 될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자를 사랑할지 뻔한 이치가 아닌가.

여기서 한가지 더 집고 넘어가고자한다. 더 좋은 삶을 함께 하고자 전도하는건 좋은 발상이지만 그 과정이 마치 노련한 세일즈맨이 영업하는것 처럼 상대를 얼르고 달래며 부담스럽고 불편하며 불쾌하게 만드는것이 종교를 전도하는 신도의 자세는 아니지 않은가.... 전도는 전단지에 사탕하나 넣어서 돌리는 길거리 영업이 아니다. 자신의 삶 자체가 전도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지침서가 녹아들어 있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이 순간 순간 상대를 감동시키는것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전도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만 글을 접어본다.

특정 종교를 비방하는게 아닌만큼 다시한번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신이 속한 종교단체의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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