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딸을위한 의로운 살인이 범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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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딸을위한 의로운 살인이 범죄인가?

by GhostJiN 2009.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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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딸을 위한 아버지의 정의로운 살인... 범죄인가?

변태성추행 당한 4살 딸 위해 아버지가 복수?    
지금 동유럽의 리투아니아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사건으로 들끓고 있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성추행 당한 내 어린 딸과 다른 어린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런 성도착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놓아두고자 하는 그런 이들이 있는 한

난 절대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나는 아동 성추행범들과 싸울 것이다. 

만약 나의 네 살짜리 딸조차도 보호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원문기사전송2009-10-15 18:40

 

* 한국 온라인 신문협회의 규정에 따라 기사의 제목과 본문 일부 및 URL만 스크랩이 가능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가족이 이런 일 당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건은 친고죄라서 가족 스스로 사건을 신고해야하고 접수 후에 혹여 경찰에서 쉬쉬하거나 나 몰라라 하면
외롭고 힘겹게 혼자 증거수집하고 증인찾고 개인이 과학수사까지 다하다 보면 지친다... 정신적 충격에 사회적
배신감에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이러다 보면 자포자기하고 자신이 한심하고 처량해 보여서 좌절한다. 그러고 나면 뭐가 남을까?
진정 모른다면 당신은 편하게 살아왔음을 하늘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결국엔 살의 [殺意] 만 남는다......
좀 씁쓸한 결과지만 거짓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세상 누구도 이러한 억울함을 해결 못해준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자신이 힘없고 못 배워서 이렇게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소중히 여겨온 사람마저 보호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최소한 정의를 찾아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나...
그래도 정의를 지켜야 한다고? 그런 말은 당사자가 되고 나서 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아픔을 똑같이 느껴보지 못한 자에게서 당신의 아픔을 이해받을 수 있을까... 도리어 피해자 앞에서 성인군자인 듯 법조문이나 도덕 교과서를 읊조리고 있는 자의 위선이 가증스럽다고 생각할 뿐이다. 분명 인권도 소중하지만 솔직히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인권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할 때 발생하는 거라고 믿는다.

간단한 예로 전쟁의 아비규환에서 적을 살해하는 건 범죄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군을 죽인다면 분명 살인이라는
범죄가 발생한다. 왜 아군은 죽이지 않고 적군만 죽일까. 왜일까? 왜 같은 사람인데 살인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가....

적도 인간이기에 분명 인권이 있다. 왜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같은 목표를 위해 움직이면서 서로의 목숨을 서로에게 맡기고 의지하면서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고 지켜내길 바라는 범주안에서 충실히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군이란 범주에 충실히 의무를 다하고 있기에 서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목숨을 서로가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아군으로써의 의무를 지켜주고 있기에 아군으로써의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물며 군대조직보다 더욱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집단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사회조직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의무를 내동댕이 쳐버린 자라면 이미 인권마저 내동댕이 쳐버린 거라 봄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공공의 적으로 판정해서 모든 권리를 박탈함이 옳다.....


피해자들이 이런 일로 얼마나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겠는가... 지금 당장 당신에게 누가 채팅으로 욕해봐라 울컥해서 억울해서 아마 잠도 못 잘 사람드리 많겠지만.. 이런 일은 위의 기사의 주인공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못 되는 억울함이고 분노다. 저런 분들이 범인을 죽였어도 우린 욕할 수도 죄를 물을 수도 없다...


나에게 왜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스스로가 이런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의무도 제대로 못하면서
저 사람의 죄를 물을 순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회의 조직체가 미연에 사건을 방지하며 사건이 발생후라도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울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사건이 발생되지 않도록 파수꾼의 자세로 자신 주변의 부당하고 부패한 일에 용감하게
항거하며 관심을 보였다면 피해자나 그 가족이 굳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범죄자가 되었을까?


우리는 이런 사건을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자신이 연관되어 귀찮아지기 싫어하는 문화적 병이 발병하고 있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문화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좋은 면도 있었다. 우리의 그런 좋은 면마저 사라지는
상황에 부모는 자식에게 말한다.  괜히 험한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분명 한두 사람이 그런 사건에 끼어든다면 목숨이 위태롭겠지만 적어도 여러 사람이 그런 일에 항거한다면 어떨까? 우리 사회가 한두 사람의 올곧고 의로운 사람만이 남아있기에 범죄의 현장이나 부패의 현장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 사람의 힘은 미미하겠지만 여러 사람이 항거한다면 다르지 않겠는가....


우리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이런 말을 듣는다..
지가 무슨 영웅이라고 칼 든 사람 잡다 죽느냐....
바보짓이다.  어리석다고..... 허세를 부렸다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칼에 찔린 누군가가  사람들의 외면을 당하면서 길거리에서 방치당하는 기사를 보면서
말세라고 말한다. 나 한 사람이 나서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진 않는가? 당신 한사람만 더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면 거리는 더욱 안전해질것이다.어느 실험에서  많은 행인이 건널목을 건너는 상황에서  한사람이 멈춰서서 하늘을 보면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고 모든 사람은 무관심하게 자신의 길을 향했다. 두사람이 멈춰서도 역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하지만 세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본순간 엄청난 변화가 수많은 인파사이에서 벌어졌다. 너도 나도 세사람이 보는 하늘을 보기위해 건널목에서 멈춰서있었다. 신호가 바뀌는데도 말이다.  우리 한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적어도 세사람의 정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군중을 움직일수있다는 뜻이다.

내가 정의롭지 못했기에 이런일이 벌어진 거라 생각지 않는가? 내가 관여된 일이 아니기에 나는 무죄이고 결백한가?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난 무엇인가? 군중 속에서 나만의 무인도에서 나만의 이익을 챙기는 표류자인가?

 
이런 생각에서 바라본다면 누가 저 사람을 감옥에 보내겠는가..... 자신이 판사고 검사라서 법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저 사람의 죄를 물으면서도 저 사람의 억울함은 방치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이미 경찰이 그를 보호하지 못했고 법이 정의를 세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웃이 범죄를 방치했다.. 이미 자신들의 의무도 똑바로 못한 것이다.


국가와 사회와 이웃이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자연의 법칙대로 자신스스로 자신을 항변하고 방어하는 게 범죄일까?. 그것이 살인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혹여 우리들 스스로가 피해자를 또 다른 범죄의 가해자로 뒤바꾸고 있는 건 아닐까...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복수하지 말라는 건 그냥 순순히 살해당하고 강간당하라고 말하는 것이고 선량한 사람을 사형대로 보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진: Unsplash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의 시력을 잃게 할 경우, 그의 시력을 같이 잃게 한다. 

만일 자유인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그 뼈를 같이 부러뜨린다. 

보통인의 눈이나 뼈를 상했으면 1 미나를 배상한다. …
같은 계급의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의 이를 부러뜨렸으면 그 이를 같이 부러뜨린다. 
[함무라비 법전 제196조∼200조]

 

 

정의가 무엇일까? 단순히 과거 함무라비 법전의 단순 명료한 법이 고대의 야만적 법일뿐일까....

현대의 그저 피를 보지 않고 잔인성을 배척하는 것이 교양이고 지성일까.... 그것이 종교인들이 말하는 사랑일까...

모세의 십계명도 쓰여있지 않는가...

 

그러나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애굽기 21:23∼25]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레위기 24:20]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이니라.

[신명기 19:21]

 

 

뭐 예수님이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대어주라고 했다지만 지금의 현실을 본다면 아마도 땅을 치고 통곡하시겠지.... 분명 다시 구약성서 시대로 돌아가서 모세의 법을 다시 주실지도 모를 일이다.
불경에나 선경에나 코란에도 악인이 천당이나 극락에 가는 일이 없다.

왼뺨을 맞고 오른뺨도 내주라지만 정말 심판에서는 봐주지 않는다. 바로 지옥으로 보내는 건 뭐란 말인가...
인간으로서 뺨을 내 줄상황이 아니란 소리다. 진작에 모든 게 사랑으로 덮어줄 수 있다면 전지전능한 신의
세계에 왜 지옥이 필요할까. 분명 구제되지 못하는 짐승이 있기 때문에 지옥이 필요한 거라 생각한다.


하물며 인간세상에 성인군자도 아니며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에게...

그것도 피해자에게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을 쉽게 하는 자가 누구냐....

전지전능한 신마저도 착한 자와 악한 자를 구분하여 경리수용하는 판에 함께 합사 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분명 깨끗한 옷을 빼입고 한 손에 책을 들고 고고한 척 커피를 마시는 현대인이지만 자신의 비폭력만이 지성이며
교양이고 현대인의 표본이라 생각하는 자가 진실이라 믿는가? 폭력이 아주 배제되고 죽음이 배제된 세상이라면 진실이겠지... 하지만 세상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이론만으로 현실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해선 안된다. 정의란 다수의 대중이 인정하고 수긍하는 일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편한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안전한 것 평화로운 것 여유로운 것 이처럼 대다수가 수긍하는 범주를 적용하는 것이 사회조직의 역할이 아닐는지.... 법과 규범 질서 예절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법과 규범 질서 예절을 위해 사람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사람을 그러한 테두리에 가두려는 현재의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성문법이나 불문법은 사람이 편하자고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불편을 느낀다면 바뀌어야 함이 당연하다.

 

사진: Unsplash 의 Dvir Adler


난 오늘도 생각해 본다. 정의는 무엇인가....
아버지로서 딸을 위해 정의로운 살인을 한 것이 범죄일까... 아마도 사회적으로  범죄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전에 의해서 법원에서는 범죄로 분류될 것이다.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사사로이 살인이 난무해선 안될 것이다. 그러한 살인이 보편화된다면 그 역시 사회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을 정당화하자는 뜻이 아니다. 이런 개인의 복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당사자가 수긍하고 만인이 정의를 세웠다고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예방과 집행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저울은 권리 다툼을 공평하게 해결함을, 칼은 사회 질서를 해치는 자에게 공권력으로 응징을 가한다는 뜻이며, 눈을 가린 것은 사사로움 없이 공평 무사함을 의미한다.   이 여신의 이름은 디케. 법과 정의의 여신입니다. 우리 사회엔 아직 법과 정의의 정신이 남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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