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국형 경제의 늪 저성장과 사회적 양극화 해결법은 없는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선진국’이라는 지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따라붙는다. 바로 '저성장'이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며, 경제가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급성장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개도국 시절에는 서민에게도 기회가 돌아갔고, 삶의 풍요로움이 비교적 폭넓게 분배되었다. 하지만 일단 선진국의 틀 안에 들어서게 되면, 그 구조는 극명하게 변한다. 경제의 성장은 정체되고, 이미 기득권을 장악한 소수만이 계속해서 수익을 창출하며, 그 아래 계층은 구조적으로 착취당하게 되는 것이다.
선진국 경제란 기본적으로 고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자국 내 생산활동을 외국, 특히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키는 구조다. 더 싼 원재료와 더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해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자국과 다른 선진국 소비자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국 내 서민층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남는 건 점점 높아진 눈높이와 의식 수준뿐이다. 그러나 막상 그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기득권층에게만 허락된다. 이제 막 선진국이 된 나라에서, 아직 기득권이 되지 못한 이들이 기득권에 진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겉보기에는 깨끗하고 규칙과 원칙이 잘 갖춰진 사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 그 제도권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시스템의 바깥으로 밀려나면 그제야 느끼게 된다. 숨막히는 듯한 제도의 벽, 그 속에서 자신을 조각내 부품처럼 갈아 넣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선진국’이었는가? 아니면 모두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숨 쉴 수 있고, 함께 성장해갈 수 있는 ‘개도국형 사회’였는가? 선진국형 임금 체계와 노동환경은 오직 ‘기득권 노동자 계층’에게만 혜택을 제공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노동 구조는 오히려 덜 받더라도 삶의 균형과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는, 다소 느린 개도국형 모델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는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 더 많은 보상을 위해 더 치열하고 냉정한 경쟁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적당한 보상 속에 안정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가. 정답은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예컨대, 왜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은 선진국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아도 여전히 삶에 대한 만족을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닐까? 만약 조금 더 느리게, 단단하게 변화해 왔다면 어땠을까?
이런 고민은 단지 정치경제적인 구조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선진국이 되는 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는 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