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 총격 암살의 역사, 총탄과 권력
미국시간으로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펜실 베니아 연설 일어난 저격 살인 미수 사건은 미국에서 대통령, 대통령 당선자, 그리고 정치인에 대한 정치 폭력의 위험성을 다시금 드러내며 미국사회를 넘어 전세계로 충격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2008년 기준 미국에서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대통령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는 모두 15차례 일어났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암살 시도는 그 나라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안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미국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있었던 주요 암살 시도들을 살펴보고, 그 사건들이 당시와 후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보겠습니다.
1. 앤드류 잭슨 (1835년) 두차례의 암살 시도
1835년 1월 30일,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두차례의 암살 시도를 겪었습니다. 미 역사상 최최의 암살 공격으로 기록된 것은 앤드류 잭슨이 하원에서 참석한 행사 중 리처드 로렌스라는 남성이 두자루의 권총으로 두 번의 발사를 시도했으나, 두 번 모두 총이 오발했습니다. 로렌스는 정신 이상자로 자신의 재산을 잭슨이 도난했다고 믿어 범행을 저질렀고, 사건의 결과로 잭슨은 부상을 입지 않았고 로렌스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잭슨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고, 이 사건으로 대통령 경호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에이브러햄 링컨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65년 4월 14일, 존 윌크스 부스가 포드 극장에서 링컨의머리에 총을 쏘아 암살했으며, 부스는 남부 연합의 동조자로 링컨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링컨은 다음 날 사망하고 부스는 체포되어 총살되었습니다. 이는 남북전쟁 직후 미국의 갈등과 분열이 극심했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링컨의 죽음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재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3. 제임스 가필드 (1881년)
1881년 7월 2일,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은 찰스 J. 기토에 의해 워싱턴 D.C. 유니온 역에서 총격을 받았습니다. 기토는 가필드의 외교적 임명 거부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가필드는 부상 이후 약 두 달간 생명을 유지했지만, 결국 부상으로 인해 그 해 9월 19일 감염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통령 경호와 의료 대응 체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윌리엄 맥킨리 (1901년)
1901년 9월 6일,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은 뉴욕주 버팔로에서 열린 팬아메리칸 박람회에서 레온 촐고스에 의해 총격을 받았습니다. 촐고시는 무정부주의자로 정부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고 맥킨리는 8일 후 9월 14일에 사망했으며, 촐고스는 전기의자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비밀경호국의 역할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12년)
우리에겐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가 대통령 후보 시절 매킨리 대통령과 같은 고향 출신인 어느 정신질환자 20대 청년이 시어도어가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매킨리를 암살했다며, 뉴욕 시에서 취임 초기 정견 발표를 하던 그에게 권총 총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어도어의 목에 걸려 있던 십자가 목걸이와 두툼한 연설 뭉치, 두껍게 끼어 입은 옷 덕에 총탄은 그의 피부에 박히게 되었다. 화가 난 시어도어는 자신은 결백하다며 피를 흘리면서도 연설을 끝까지 마치고 내려걸로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후 슈랭크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6. 프랭클린 D. 루즈벨트 (1933년)
1933년 2월 15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당선자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조셉 잔가라의 총격을 받았습니다. 루즈벨트는 총알이 빗나가 무사했지만, 시카고 시장 안톤 세르막을 비롯한 5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잔가라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부에 대한 분노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잔가라는 전기의자에 의해 처형되었는데 그는 죽는 그순간까지 두려움 없는 모습으로 분노에 가득차 있었고 루즈벨트와 미국 사회를 저주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경호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7. 존 F. 케네디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대통령 후보 경선 중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공식적인 발표로는 오스왈드는 케네디의 정책과 냉전 중의 미국 정부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오스왈드는 체포되었으나 이틀 후 잭 루비라는 인물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케네디의 암살로 미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또한 석연치 않은 여러 정황과 범인의 사망까지 무수한 정치적 음모론이 퍼져나갔고 이런 음모론 때문에 여러 조사가 연이어 착수되며 미국이 페닉에 빠지는 계기가 됩니다.. 케네디의 죽음은 미국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 중 하나로 현재도 남아 있습니다.
8. 조지 월러스 전 앨라바마 주지사 (1972년)
미국내에서도 강경 인종분리주의자로 잘알려진 조지 월러스 전 앨러바마 주지사는 1972년 5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중 메릴랜드주에서 아서 브레머가 조지 월러스를 총으로 저격해서 중상을 입히는 암살 사건입니다. 브레머는 정치적 동기 없이 오직 유명세를 얻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이 암살시도로 윌러스는 하반신 마비를 입었으나 생존하였으며 정치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9. 제럴드 포드 (1975년) 두번의 암살시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1975년 9월 5일과 22일 두 번의 암살 시도를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9월 5일 린다 서퀸이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총을 쏘려다 제압되었고, 두 번째는 9월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라 제인 무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총을 쏘았으나 빗나갔습니다. 두 사건 모두 정치적 불만이 동기였으나 포드는 부상을 입지 않았고 서퀸과 무어는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10. 로널드 레이건(1981년)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워싱턴 D.C. 힐튼 호텔에서 존 힝클리 주니어에 의해 총격을 받았습니다. 힝클리는 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레이건은 부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이후 힝클리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현대적 비밀경호국의 경호 체계와 대통령의 안전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11.빌 클린턴 (1994년)
1994년 10월 29일 프란시스코 마틴 두란이 백악관 앞에서 자동 소총으로 총격을 가해 암살 시도를 했으나 당시 클린턴은 백악관에 있지 않아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두란은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두란은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투옥 되었습니다. 이후 백악관에 대한 지접적인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더욱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 지게 됩니다.
12. 조지 H. W. 부시 (2005년)
2005년 5월 10일 블라디미르 아루토유니안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수류탄을 던져 암살 시도를 했으나 수류탄이 불발되어 부시는 부상을 입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미국역대 대통령 관련 최초의 직접적인 폭탄 암살 시도로 기록됩니다. 아루토유니안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반대하여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으며 아루토유니안은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3. 오바마(2016년)
2016년 11월16일 미 비밀경호국에 의해서 백악관에 총격을 가한 혐의로 오스카 오르테가-에르난데스를 체포 했습니다. 오르테가는 아이다호 주 아이다호폴스 출신으로, 지난달 31일 가족에 의해 실종 신고가 되었던 워싱턴 DC 거주민이였습니다. 그는 과거 3차례 체포된 기록이 있으나 테러나 과격단체와는 무관하며, 정보 당국의 '관찰 대상'에 오른 적은 없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오르테가가 정신질환이 있으며 신의 계시에 따라 백악관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습니다. CBS 뉴스는 그의 지인을 인용해, 그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을 '적그리스도'에 비유하는 등 개인적인 증오심을 보였다고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비밀경호국은 11일 밤 백악관 인근에서 총성이 들린 뒤 조사를 시작했고, 16일 펜실베이니아주 인디애나 인근의 한 호텔에서 오르테가를 체포했습니다. 경호국은 두 발의 총탄이 백악관 남쪽 600∼700m 밖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한 발은 오바마 대통령 가족이 거주하는 백악관 2층 유리창을 맞혔습니다.다. 이 총탄은 외부 유리창을 관통한 뒤 방탄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졌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샌디에이고에 정박한 항공모함 칼빈슨호 갑판에서 열린 농구경기를 관람 중이었기에 별다를 피해는 없었습니다.
백악관이 총격을 받은 것은 1994년 10월 빌 클린턴 대통령 때 이후 처음이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콜로라도 출신의 프란시스코 마틴 듀란은 징역 4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14. 도널드 트럼프(2016년)
2016년 6월 18일 당시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암살하려던 마이클 스티븐 샌퍼드라는 영국 남성은 18일 라스베이거스 트레저아일랜드 카지노에서 트럼프가 유세 연설을 하던 중 트럼프의 사인을 요청하며 경찰관 주위를 맴돌다 경찰관의 총을 빼앗아 트럼프를 저격하기위해 경찰관의 총 손잡이를 쥐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샌퍼드는 체포 후 국토안보부 비밀경호국 요원에게 “트럼프를 죽이기 위해” 현장에 왔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영국 국적의 샌퍼드는 18개월 전 미국에 입국해 1년간 트럼프 암살 계획을 세워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이날 시도가 실패할 경우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암살을 재시도할 계획이었으며 수사 당국에 “내일 내가 길 위에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도할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그는 무기를 다룬 경험이 없어 범행 전날 라스베이거스의 사격연습장을 찾아 9㎜ 구경 권총으로 사격연습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샌퍼드의 국선 변호인은 샌퍼드가 정신 질환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자폐증이 있고 자살 시도 전력이 있다고 변호 했습니다. 2016년 12월13일 법원은 샌퍼드에게 불법 총기류 소지와 업무 방해 혐의를 적용했고 담당 판사는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보고 감형을하며 이날 공판에서 징역1년 1일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5. 도널드 트럼프(2024년)
2024년 7월 13일 18시 12분경,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의 버틀러 농장 박람회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연설을 하던 중 총 발포음이 여러 차례 발생했습니다. 총성이 들리자 트럼프는 귀를 감싸며 마이크 스탠드 아래로 숨었고, 경호원들이 그를 에워싸 보호하면서 현장을 벗어나려 했습니다. 트럼프는 오른쪽 귀에 피를 흘렸지만 경미한 부상으로 보이며, 주먹을 치켜들어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하며 동요한 군중을 진정시켰습니다. 군중은 환호하며 "USA"를 연호했고, 트럼프는 경호원들의 보호 아래 방탄 차량에 탑승해 현장을 이탈,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역 경찰에 따르면, 인근 건물 옥상에 있던 범인은 경호팀 저격수에게 머리에 총을 맞아 즉시 사살되었습니다. 이 총격으로 유세 현장에 있던 지지자 1명이 머리에 유탄을 맞아 사망했으며, 비밀임무국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안전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유세 참석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트럼프는 사건 후 트루스 소셜에 성명을 올려 신속한 대응에 감사하며, 사망자와 부상자 가족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23시 45분, 경찰과 관련 기관이 기자회견을 개최했고, FBI는 사망한 용의자의 동기나 정확한 신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7월 14일 오전 1시 45분경, FBI는 총격범의 신원을 토머스 매튜 크룩스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크룩스는 펜실베이니아 베설 파크 출신의 20세 남성으로, 2022년 베설 파크 고등학교 졸업 후 전미수학과학이니셔티브에서 상금을 받은 바 있습니다. 크룩스는 AR-15 계열 총기를 사용해 약 135미터 떨어진 창고 건물 옥상에서 트럼프를 저격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총격 즉시 저격 경호팀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크룩스의 동기와 성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외로운 늑대형 범죄일 가능성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가 공화당 등록 유권자였음에도 바이든 취임일에 진보 성향 단체에 기부한 기록이 있어,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범행 동기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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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까지 조사된 자료에따르는 이시기까지 발행한 총 15건의 암살시도 중 11건이 권총, 2건이 자동소총, 1건이 수류탄에 의한 범행이었다. 미국의 만연한 총기 소지 문화가 대통령 암살 등 정치 폭력의 배경이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트럼프는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지지층을 가지고 있어 그의 야외 공개 행사는 이런 정치적 암살 시도에 위험에 더욱 크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근 정상들을 겨냥한 공격이 이어졌다. 2021년에는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2022년에는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당했다. 이런 사건들은 정치인에 대한 폭력의 위험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암살 시도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긴장을 반영하는 사건들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대통령 경호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으며, 경호 체계의 개선과 강화에 기여했습니다. 또한, 대통령 암살 시도는 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러한 교훈을 기억하고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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