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터를 잡은 소중한 친구 녀석이 추석이면 고향에 내려옵니다. 울산으로 이사한 본가에서 멀 텐데도 어김없이 꼭 부산으로 내려와 저를 보고 갑니다. 일 년에 명절날 두세 번 밖에 부산에 오지 않고 제가 바빠서 술 한잔 못할 때가 많지만 어김없이 얼굴이라도 보러 제 일하는 곳으로 부지런히 다녀가는 인간미 철철 넘치는 좋은 사람입니다.
저 역시 그런 친구이기에 제가 힘들 때나 아플 때도 친구가 원하면 친구 곁으로 달려갑니다. 그런 사이기에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기 위해 만사 제쳐두고 하루전날 서울로 달려가기도 했죠~
이번 추석엔 내려오자 말자. 뜬금없이 좋은 후배 있다고 소매를 끌고 소개 시켜주겠다고 보챕니다.
자신 혼자 장가간게 마음에 걸렸는지 아직도 솔로 부대장을 역임하고 있는 친구의 장래를 위해 선뜻 자리를 마련해 주는 친구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괜스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가까이 있으면서 얼굴보기도 힘든 친구가 많지만 이렇게 일 년에 한두 번 보고 통화 몇 번 못하는 친구임에도 가슴 뭉클한 지난 추억이 묻어나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요? 큰 도움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내 장래에 도움이 되는 친구도 아닌 단지 있는 그대로 내 지난 소중한 과거의 추억으로 머물러 주고 나와 그 사이의 우정 자체가 하나의 내 인생을 함께 써온 사이기에 이것만으로 내 존재와 그의 존재가 증명되는 듯합니다.
한잔 술잔에 내가 잊어버린 기억을 그가 되살려주고 그가 잊어가던 어린 시절 추억을 내가 되살려주고....
첫 사회생활때 서울에서 신세를 지고 몇 번이고 미안하도록 신세를 지는데 얼굴색 한번 붉히지 않던 친구...
솔직히 그런 친구가 장가 갈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친구를 빼앗긴다고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좋은 친구가 한가정을 이루는 게 저에게도 행복이었답니다.
다시는 총각시절 처럼 둘이 붙어서 술 마시기도 힘들겠지만 말이죠~ㅎㅎㅎ
보통 친구는 장가가면 멀어지기 마련이고 자식 낳고 나면 연락하기도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솔직히 먹고 살기 바쁘고 가족건사 하기 바쁜 친구들이 이해 갑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몇몇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런 친구가 몇번이고 신신당부하며 정말 착하고 아끼는 후배니 잘해보라고 자기가 사람을 보증 선답니다.
첫 만남은 그녀의 가게로 찾아가 1차을 마시고 그녀가 일을 마치자 2차는 횟집에서 술 마시고 솔직히 제대로 얼굴도 못 봤답니다. 말도 몇 마디 못 했습니다. 수줍음이라고 하면 이 나이에 주책일까요? 연애도 꽤 한편이지만 아직도 이렇게 순진한 구석이 있다는 게 가끔 미스터리입니다. ㅎㅎ
아무튼 첫 만남에 배려심 많고 어른스러운 모습에 한번 반했습니다.
어리기만 한 여자가 아닌 정말 어른스럽고 약간은 무뚝뚝 한듯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어제 잠시 통화하면서도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말을 이어갈지 몰라 몇 번이나 전화번호 찍었다 다시 지우 고를 반복했습니다. 참 어리숙합니다.
용기를 내서 미친 척 통화키 누르고 봅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 목소리에 괜히 도둑놈이 된 듯 죄스럽게도 가슴이 쿵쾅거리며 호들갑입니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보니 없던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말이 줄줄 흘러나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어 버렸습니다. 누가 통화내용 들을까 쑥스러워서 몰래 공원벤치에 앉아서 전화를 했기에 다시 집으로 가려고 일어서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없어 두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실수한 거 아냐? 아~ 미치겠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통화의 내용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왤까요? 그냥 빈소리를 한 걸까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 한걸까요? 그도 아니면 뭘까요?
몇 번이고 생각해 봅니다. 상대입장에서 얼마나 주책없는 사람으로 볼지 생각하니 다시는 전화를 못할 거 같습니다. 속으로 되뇌어 봅니다. '아이 바보 같은 놈... 멍청이.... ' 하지만 그래도 속마음 한구석에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 위선자...ㅎㅎㅎ'
이런 게 설렘일까요? 추운 겨울이 다가오지만 나이 많은 노총각의 마음은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내려쬐는 듯 따스하기만 합니다.
이 글은 혹시나 그 사람이 볼까 봐 부끄러워서 숨겨둔 글 입니다만 이젠 좋은 추억이니까 다시 공개로 바꿔봅니다. 결과가 좋진 않았지만 뭐 괜찮습니다. 추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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