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 1화 스토리와 드라마 속 역사 정보, 중국 역사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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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 1화 스토리와 드라마 속 역사 정보, 중국 역사 드라마

by GhostJiN 2024.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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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 1화 스토리와 드라마 속 역사 정보, 중국 역사 드라마

안녕하세요! 오늘은 2006년에 방영된 46부작 중국 드라마 "주원장"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명나라 초대 황제인 주원장에 관한 시리즈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중 호군 주연의 2006년작 "주원장이" 가장 전통적 사극형식의 유명한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쌍벽이라고 불리는 진보국 주연의 "전기황제 주원장 2010"이 거론됩니다. 포청천 스타일의 사건해결 옴니버스 스타일의 주원장 원하신다면  "홍무대안 2012"를 추천드립니다. 그 외 코믹형식의 현대적 감각을 원한다면 걸개황제 전기 2016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바로 호군 주연의 오리지널인 주원장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과 함께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평민출신으로 황제가 된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방이 그나마 지방의 말직 관직이라도 한데 반해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말그대로 일자무식이었지만 엄청난 메모광이었고 부지런한 인물이었기에 전쟁터에서도 학자들에게 끊임없이 배우기를 멈추지 않은 노력파 황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우 심한 주걱턱과 곰보 자국을 가진 추남이라고 전해집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주걱턱을 용의 관상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긴 합니다.

 

이런 주원장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인 주원장은 전통적인 중국 사극답게  역사적 배경과 드라마틱한 요소가 잘 어우러

진 작품입니다.  중국특유의 어설픈 전투 장면과 심각하게 축약된 사이즈의 빈약한 전투씬을 제외하고는 스토리 측면에서 매우 짜임새가 있고  배우들 역시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연기를 위해 정책적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키워진 배우들답게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첫 화는 주원장의 어린 시절과 그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하기 시작했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원장의 어린 시절

시대는 전 세계를 호령하던 원나라 제국 말기.... 수많은 제국들의 말기 모습과 같이 원나라도 어리석고 방탕한 황제가 백성을 수탈하고 엄청난 기근과 재난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나가고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나던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봉양현 가난한 농부 주오사의 아들로 태어난 주중팔은 8명의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이름에서 보듯 형제들 이름은 중일 중이 중삼 이런 식으로 대충 지어질 만큼 아이들에게 신경 쓸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가난과 기근으로 이미 중이와 중팔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죽고 없었고 어머니는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린 중팔도 가족을 돕기 위해 지주의 소들을 키우는 목동 일을 하며 마을 아이들과 함께 들에서 놀이를 하며 배고프지만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자신과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의 대장으로서 스스로를 황제라며 지칭하는 남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신반의하며 그런 중팔을 따르는 아이들은 어느 날 무리 중 한 명이 배고픔을 못 이기고 쓰러지자 중팔에게  본인이 황제라면 배고파하는 자신들의 배를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요구를 하게 됩니다. 중팔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돌보던 지주의 소들 중 송아지를 잡아 자신의 무리들을 배부르게 해주는 모습을 보입니다. 비록 지주에게 엄청나게 얻어맞게 되지만 이 일로 인해 자신의 무리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고 그를 칭송하는 노래가 불려지게  됩니다.​​

 

 

가족의 죽음과 삶의 변화

하지만 이런 소소한 행복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화후의 생일을 위해 조정에서는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이게 되고 줄팔의 부모는 딸들이 굶어 죽을 때조차 먹지 않던 벼 종자를  관리에게 빼앗긴 이후 더는 수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두 아들을 남겨 둔 채 자결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중팔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부모의 장례를 치를 돈조차 없었기에 하다 못해 부모의 시신을 감쌀 돗자리 2개를 받는 조건으로 중팔은 인근 절로 팔려가게 됩니다.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다

돗자리 두 개 값으로 절에 팔려온 중팔은 허드레 일을 하며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계를 받을 나이가 되어서 머리에 향불로 지지는데도 머리에 계를 새길수 없게 되어 정식 스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조정의 수탈이 더 극심해져 자신이 머물던 절마저 약탈로 인해 파괴되자 탁발승이 되어 여러 곳을 떠돌게 됩니다.

마수영과의 운명적 만남.

서기 1351년 주원장은 장성하였습니다.  당시 상황은 원나라 조정의 부패와 무능에 저항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이중 백련교의 한상동과 유복통이 홍건군을 조직해 봉기 하였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의군이라 자칭했습니다. 그러나 우두머리던  한상동이 살해 당한 이후 그의 아들 한림아를 맹주로 추대하여 소명왕이라 칭하게 됩니다. 이 홍건군 세력의 한 무리를 거느린 곽자흥의 무리가 중팔의 고향 회서에서 활약하는 중이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연히 탁발승의 여정을 다니던 중팔 앞에 관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던 홍건적 고위간부  마일량과 마주치게 됩니다. 마일량은 이미 숨이 끊어진 자신의 아내의 극락왕생을 중팔에게 부탁하지만 원나라 조정 간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염불을 외우는 순간 중팔의 머리를 자르겠다고 겁박을 합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처형된 마일량과 그의 아내 모두의 글락왕생을 위한 염불을 해줍니다.

 

이를 구경하던 인파 속에 숨어있던 마일량의 딸 마수영은 이후 중팔이 부패한 황건적 장수에 의해 조정의 세작이란 누명을 쓰고 죽을뻔한 중팔을 구해주게 됩니다. 이때 마수영은 아버지의 의형제던 곽자흥의 도움으로 그의 양녀가 되어 있었고 곽자흥은 마수영의 은인이던 중팔의 비범함을 보고 수하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수영은 부모의 은인이던 중팔이 불편하지 않게 지극 정성으로 그를 돌보면서 둘 점점 두터운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갑니다. 하지만 수영에게 마음이 있던 곽자흥의 아들 곽천서는 수영의 관심과 아버지의 신임을 함께 얻고 있는 중팔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고 중팔을 제거하려고 하는 계기가 됩니다.

 

 

어린 목동 시절 의형제 탕화와 서달과의 재회

중팔은 이곳에서 홍건적 마부 직책을 받고 일하게 되는데 어느 날 말 두필을 탕화와 그 부관 서달이라는 장수들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이 장수 둘은 다름 아닌 어릴 적 중팔이 이끌던 목동 무리의 사람이였습니다. 이들은 현재의 봉양현 태수 보다 더 힘이 있는 홍건군의 직급이 높은 장수임에도 중팔을 어릴적 의형제의 예로서 반겨 줬습니다. 하지만  중팔은 서열이 구분 되지 않는 그들의 환대를 엄하게  지적하며 자신을 형으로써 깍듯이 대하라고 합니다.  어릴적 굶어 죽어가던 자신들을 위해 지주의 소도 잡아 나눠준 중팔의 은혜를 입은 장수들은 중팔을 깍듯이 형님으로 모시기로 의기투합합니다. 

 

이렇듯 장수들의 맏형으로 입지를 굳힌 중 팔이였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중팔은 사적 인맥에 연연하지 않고 의동생들을 장수로 깍듯이 대우하며 자신의 마부 직책에 최선을 다하는 공과사가 확실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규율도 없이 술에 취한 홍건군들의 모습에서 보듯 음식과 술을 마시고도 의병이라는 이유로 무전 취식하려는 아우들에게 의군답게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라고 말하면서 다른 장수들이 체면을 세우려고 강제로 백성들에게 상납받는 악습을 한고 해서 부화뇌동해서 따라 하지 말고 의병답게 행동을 하라는 말을 합니다.  이 또한 그의 비범함을 잘 보여줍니다.

 

 

주중팔의 첫 홍건적으로서의 출병

이때  조정에서는 반란군 토벌을 위해 회서 지역 일대로 승상을 토벌대 총독으로 삼아 10만 대군을 직접 몰고 내려보내게 됩니다. 그 토벌대가 이곳 호주성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홍건군은 다섯 명의 군벌 총독들이 권력 다툼을 벌이는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팽총독을 태수로 해서 조총독, 이 총독, 손총독, 곽총독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호주성 밖 협곡에서 매복하여 토벌대를 치자고 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고  그나마 최정예로 꼽히던 손덕애 군단과 곽자흥 군단이  매복을 맡게 되지만 이때도 서로 총괄자를 하겠다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로 인해 각자 매복을 하게 됩니다.  곽자흥의 출격으로 중팔은 홍건적으로서 첫 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곽자흥의 아들 곽천서는 손군단과 합심해서 싸우지 말고  손군단과 관군이 둘 다 힘이 빠지면 어부지리를 노리라고 담당 장수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면서 중팔을 제거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립니다. 중팔의 운명은 어찌 될까요?

 

지금의 안후이성 봉양현의 지명은 원나라 대에는 호주 (濠州) 종리현이라고 불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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