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 화장술 미의식 속 눈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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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 화장술 미의식 속 눈썹의 역사

by GhostJiN 2025.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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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 화장술 미의식 속 눈썹의 역사


히키마유(引眉): 일본 전통 미의식 속 ‘눈썹의 역사’


일본의 전통 화장법 중 하나인 *히키마유(引眉)*는 단순한 미용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의 미적 기준과 계층 문화, 나아가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변화를 상징하는 문화사적 코드라 할 수 있다. 히키마유는 문자 그대로 ‘눈썹을 그린다’는 뜻이며, 기존의 눈썹을 밀거나 뽑은 후 이마 위쪽에 짧고 굵게 인위적인 눈썹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는 헤이안 시대(794–1185)를 기점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여, 에도 시대(1603–1868)를 지나 메이지 유신기까지 지속되었다.

🧸미의식의 기원과 미학적 배경


히키마유의 기원은 귀족계층의 미적 이상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고대 일본에서 이상적인 미인은 하얀 얼굴, 좁은 이마, 그리고 **검은 치아(오하구로, お歯黒)**를 갖춘 존재로 여겨졌다. 이는 단순한 외모 선호의 차원을 넘어, 당대의 종교적·도덕적 가치, 신체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특히 ‘좁은 이마’는 순결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상징했기 때문에, 자연 눈썹을 밀어내고 인위적으로 눈썹을 이마 위에 그리는 방식으로 미의식을 구현한 것이다.

또한 히키마유는 얼굴에서 눈썹과 눈썹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고귀한 이미지를 준다는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이는 당대 문학 작품이나 회화 자료에서도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같은 고전문학 속 여성 인물들은 이러한 화장을 통해 귀족적 이상에 부합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남성 귀족과의 관계, 그리고 여성화의 역사


히키마유는 처음에는 남녀 모두에게 유행하던 화장법이었다. 특히 헤이안 시기에는 남성 귀족 또한 흰 분을 바르고 히키마유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당시 귀족사회가 문학과 예술, 향과 의복에 높은 관심을 가지던 미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를 지나 무사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남성의 외양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실용성 중심으로 이동했고, 히키마유는 여성의 화장법으로 정착하게 된다.

에도 시대에 이르면 히키마유는 여성의 결혼과 출산을 상징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적 의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결혼한 여성이 오하구로로 치아를 검게 칠하고, 아이를 낳은 후 눈썹을 밀어 히키마유를 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인 여성이 되었음을 알리는 시각적 신호였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 여성의 정체성과 역할이 가정 내에서 어떻게 규정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문화적 장치였다.

🧸근대화와 히키마유의 소멸


메이지 유신(1868년)을 기점으로 일본 사회는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 문화를 ‘근대적’ 기준으로 재편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히키마유는 구습(旧習)으로 간주되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여성의 교육 확대와 외부 사회 진출이 시작되면서, 전통적 화장법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미의식으로 대체되었으며, 히키마유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역사적 유물로만 남게 되었다.

📌눈썹이라는 문화 코드


히키마유는 단순히 눈썹의 위치를 바꾸는 화장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미적 기준과 신체 인식, 젠더 역할, 계층 구조 등 복합적인 문화적 함의를 내포한 행위였다. 눈썹을 통해 표현된 이상적인 얼굴은 당대의 질서와 규범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사회적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역사 속 뷰티 관념을 재조명함으로써, 외모를 매개로 형성되는 사회적 가치와 권력의 구조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히키마유는 그 자체로 일본의 전통적인 미학이 현대의 다양성과 어떻게 접속될 수 있을지를 질문하게 하는 문화적 유산이다.

관련 유튜브 : https://youtube.com/shorts/IhsXBbsgMA0?si=3NtCzSsVsJTuTvP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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