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이란 무엇인가? 야쿠자 보스 전설의 주먹 한록춘 이야기
‘애국’이라는 단어는 무겁고도 거창하다. 누군가는 총을 들고, 누군가는 펜을 들고 조국을 위해 싸운다. 하지만 일본 뒷골목에서 주먹과 칼을 들고 살아가던 한 사내가 자신의 남은 생을 조국을 위해 바쳤다면, 우리는 그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바로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 두목 한록춘의 이야기다.
야쿠자의 길, 그리고 교포의 설움
한록춘은 강원도 출신으로 10대 때 홀로 일본으로 도일 후 오사카에서 술집 보이로 일했다. 이후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1953년 오사카 도톤보리에 후지카바레를 열었다. 1957년 제3대 야마구치구미 다오카 가즈오 조장 수하에 들어가 '후지카이'를 결성했다. 그는 일본으로 간 이후 어릴 때부터 차별과 멸시 속에서 성장했다. 조선인이란 이유 하나로 ‘2등 시민’ 취급을 받아야 했던 시대. 그는 생존을 위해 싸움과 조직의 세계로 들어갔고, 마침내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의 산하조직인 후지카이(富士会)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까지 오른 재일동포 야쿠자 세계에서 전설적인 주먹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의 야쿠자 인생은 단순한 범죄자의 삶과는 달랐다. 그는 일본 내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부당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역할도 자처했다. 때로는 일본인 야쿠자들과도 충돌하며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켜내려 했다.

눈을 돌린 조국, 바뀐 삶의 방향
한록춘에게 큰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960~70년대다. 일본 경찰의 대대적인 야쿠자 검거 작전 이후 1966년 조직을 해산하고 은퇴했다. 이후 '후지관광'이라는 회사를 운영했다. 1965년 한일조약을 계기로 '주 오사카 총영사관 건설 기성회'가 발족했을 때 회장이 됐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인에게는 땅을 팔지 않자, 한록춘이 일본인 부인 명의로 땅을 사서 나중에 '대한민국' 명의로 바꿨다. 2003년 민단 오사카 본부 고문, 2006년 민단 중앙본부 상임고문이 됐다. 그는 재일교포 사회에 만연한 절망감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 답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였다.
그는 점차 야쿠자의 세계에서 물러나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록춘은 재일동포 자녀들의 교육 문제, 조국 방문 및 국적 회복 문제 등에 관심을 기울였고, 실제로 한국 정부 및 민간단체와도 접촉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힘썼다.

조용한 영웅, 이름 없는 애국자
그는 당시 조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재일 조선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며 동포들을 도왔지만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포상도 받지 않았다. 한국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적도 없다. 오히려 그의 전력 탓에 세상의 관심은 그를 멀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재일동포 사회를 위한 조력에 멈추지 않았다. 그는 더 나아가 당시 열악한 상황의 조국을 위한 기부, 교육 지원, 한국 취약층 사회를 위한 활동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며, 그는 조용히 ‘자신만의 애국’을 실현해갔다.
그의 마지막은 조용했지만, 남긴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조국을 사랑했다. 죄를 짓기도 했지만, 속죄하고 싶었다. 조국은 나의 피였고, 나의 뿌리였다.”
고국에 대한 기여
- 김종필씨가 1971년에 국무총리가 됐을 때, '한국 경찰에 사이드카가 없다'고 해서 80대를 사서 보내줬다.
- 육영수 여사가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짓는데 건설비가 없다고 해서 1억 엔을 보냈다.
- 무교동에 대한체육회 건물을 지을 때도 한록춘과 이희건 회장 등 세 명이 엘리베이터를 놔줬다.
- 강원일보가 인쇄기, 등사판 등이 부족하다고 해서 일본에서 사서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 이희건씨가 오사카 흥은(興銀) 이사장 출마할 때 후지카바레 수입금 전부를 흥은에 입금해서 돕기도 했다.
한국 정부 훈장
- 1971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당시 무궁화장을 받은 사람은 두 명. 다른 한 명은 신한은행 설립자인 이희건(李熙健)씨다.
-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해외동포 42명을 '건국 60주년 행사'에 초청했다. 한녹춘 회장은 42명 가운데 한 명으로 추천돼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한록춘은 법과 정의라는 기준에서 보면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 후반부는 단연코 “조국을 위한 삶”이라 부를 수 있다. 그가 했던 선택들이 옳았는가, 그르렀는가는 후세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그의 진심은 분명했다.
애국은 꼭 성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수하고, 잘못된 길을 걸었던 이들도 결국 조국을 향해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그 또한 애국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애국이란 ‘국가를 위한 희생’이기도 하지만, ‘조국을 잊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한록춘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내가 사는 방식은 나라를 위한 것인가?” 그는 교과서 속 인물도, 무대 위의 영웅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조용히 남긴 삶의 흔적은, 여전히 뜨겁게 우리 마음을 두드린다.
야쿠자였지만 애국자였던 격변의 시대를 사신분. 일개 야쿠자도 애국을 아는데 나라의 녹을 먹고 수많은 혜택을 받는 현 시대 우리의 정치인들은 왜 애국을 모르는가?.....안타깝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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