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던 신하들에게 뼈와 살이 해체되어 흩어진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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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던 신하들에게 뼈와 살이 해체되어 흩어진 황제

by GhostJiN 2025.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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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던 신하들에게 뼈와 살이 해체되어 흩어진 황제

https://youtube.com/shorts/uf0GwrNvSjA?si=h2b4f590Ptvt3VJY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는 유럽 중세사에서 가장 강력한 황제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의 별명 ‘바르바로사(Barbarossa)’는 이탈리아어로 ‘붉은 수염’을 뜻하며, 실제로 불그스름한 수염을 길렀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1189년 제3차 십자군에 참전하며 성지 예루살렘을 향해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중심부에 도달하기도 전, 터키의 한 강을 건너던 도중 말에서 떨어져 익사하고 맙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습니다. 유럽 기독교 진영의 지도자 중 한 명이 전투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은 유럽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당연히 황제의 시신을 어떻게든 예루살렘까지 운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동 지역의 여름 날씨는 시신 보존에 치명적이었고, 소금처럼 방부처리에 쓰일 자원도 부족했습니다. 결국 부하들은 차선책으로 시신을 식초에 담가 부패를 막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식초는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황제의 시신은 급속도로 부패하면서 뼈와 살이 자연스럽게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온전한 상태로의 운반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그의 유해는 세 곳에 나뉘어 안장됩니다.
• 살은 안티오키아의 대성당에
• 뼈는 티레의 대성당에
• 심장과 다른 내장은 타르수스에

이처럼 시신을 해체하여 부위별로 나눠 안장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충격적으로 들리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꽤 일반적인 사후 처리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왕족이나 성인의 유해는 성유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조리’를 통해 부패를 막고 유해를 보존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모세열법식 매장(Mos Teutonicus)’**이라고 불렀으며, 왕족의 시신을 삶거나 염장하여 운반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왕의 시신은 먼 거리의 고향이나 성지로 옮겨질 수 있었고, 그의 권위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죽음과 그 이후의 처리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중세 유럽의 사상과 관습,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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