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굴욕 알래스카 회담, 우리도 똑같이 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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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굴욕 알래스카 회담, 우리도 똑같이 당했었다!

by GhostJiN 2025.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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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굴욕 알래스카 회담, 우리도 똑같이 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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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푸틴 알래스카 회담! 임진왜란때 우리도 당했다. #역사 #임진왜란

1593년 1월 벽제전투 패전 이후 명군 지휘부는 결전을 포기하고 심유경을 통해 일본군과의 휴전 협상에 돌입하게 됩니다. 심유경과 고니시의 회담에서는 질자(質子)의 교환, 명의 강화사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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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명군은 결전을 포기하고 심유경을 통해 일본과 휴전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논의된 안건은 단순한 휴전이 아니었습니다. 질자 교환, 명군 철수, 일본군의 서울 철수, 조선 왕자 송환, 그리고 충주 이남 혹은 대동강 이남의 영토를 일본에 할양한다는 구상이 오갔습니다.

즉,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 일본과 명이 나눠 가지려는 분할안이 등장한 것입니다.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 사이의 회담에서는 이미 대동강을 기준으로 남쪽은 일본, 북쪽은 조선(명 영향권)으로 나누자는 밀약까지 오갔습니다. 실제로 평양성 탈환 전까지는 군사적 분계선이 성립된 셈이었죠. 그러나 조선 조정은 이 제안에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이여송과 송응창 같은 명군 장수들도 “조선 땅을 다른 나라에 넘길 수 없다”고 강경히 맞섰습니다. 결국 협상은 4년 넘게 지리하게 이어졌으나 성과 없이 파탄으로 끝났고, 일본은 정유재란으로 재침에 나섰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이 주체가 아닌, 강대국 간 협상에서 배제된 대상으로 취급되었던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평양 탈환, 연합군의 반격, 끝없는 저항을 통해 ‘분할’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과거의 역사는 반복 된다고 하죠.
현재 우크라이나와 알래스카 회담이 조선과 닮은 상황입니다.

알래스카에서 열렸던 미·러 정상인 트럼프 푸틴만 참석한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직접 참여하지 않은 채, 두 강대국이 종전 영토분할 협의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자국의 영토와 주권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논의하는 셈이었고, 이는 임진왜란 시기 명과 일본이 조선을 나누려 했던 구도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조선의 경우는 일본이 대동강 이남을 요구했고, 명 내부에서도 조세 징수권을 명이 직접 쥐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조선의 주권은 위태로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러시아는 미국에게 도네츠크와 동부 점령을 기정사실화하고 러시아 영토를 인정 할 것과, 종전 협상 테이블에서 우크라이나가 배제되도록 요구했습니다 .

두 경우 모두 당사국이 주체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조선은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조선은 세 가지 전략으로 ‘분할 운명’을 벗어났습니다.

첫째, 지속적 저항 이죠.
지방 의병, 관군, 백성들이 끊임없이 일본군을 괴롭혔습니다. 이는 일본이 한반도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명분과 국제 여론 확보입니다.
조선은 명에게 “우리는 멸망한 나라가 아니라, 재건 가능한 나라”임을 끊임없이 호소했습니다. 류성룡 등이 올린 상소는 조선을 단순한 속국이 아니라 동맹국으로 인식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셋째, 전장의 성과 확보입니다.
평양 탈환과 한양 수복 같은 결정적 승리가 있기에 조선은 분할안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군사적 성과가 없었다면 조선은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 채 분할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크라이나가 나아갈 길은 조선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겁니다.

강대국이 운명을 정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 스스로 전선에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조선이 평양 탈환으로 분할안을 무산시킨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전장에서 주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국제 여론과 외교 활용이 중요합니다.
조선이 ‘의리’를 내세워 명을 움직였듯, 우크라이나도 국제사회의 도덕적·법적 명분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또한, 장기 저항 체제 구축은 필수입니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 이유는 저항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역시 장기전을 대비해 사회 전체의 저항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16세기 말, 명과 일본이 조선을 남북으로 나누려 했던 분할안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조선의 끈질긴 저항, 국제 외교의 설득, 그리고 전장의 성과가 이를 막아낸 것이죠.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해관계로 영토와 안보를 논의하더라도, 당사국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조선의 경험은 보여줍니다.

자강 없는 평화와 동맹은 존재할수 없습니다. 스스로 강해져야 함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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