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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생각하기

성문란이라구요? 정말 말세일까?

by GhostJiN 2010.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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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란이라고요? 정말 말세일까?

성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변화한 시대에 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요즘 흔히들  세상 말세라거나 동방예의지국이 성에 문란해졌다고 한다.

언듯 듣기에는 진실일듯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보통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성이 매우 자유롭게 표현되었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는 반면 조선시대는 보수적이면 성의 규제가 엄격했다고 알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풍속화나 역사서에서 보면 그렇지마는 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회의 지배층은 유교의 영향으로 엄격한 규제를 받았지만 일반 양민은 성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에 쉽게 연애를 할 수 있었고 과감한 노출도 가능했다.

   

지금은 가슴의 노출이 매우 외설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까지도 우리의 여인들은 가슴을 들어 내어놓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유행으로 전해졌다.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충격 그 자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 문화는 지금과 많이 다를 뿐이다. 솔직히 이십 년 전만 해도 버스 지하철 공공장소 어디서나 아기들에게 젖먹일 때  가슴을 들어내놓고 당당하게 아이에게 젖을 물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 자체가 사라졌다. 그냥 단지 문화라고 봐야 한다. 예전엔 회사 사무실에서 임산부가 있어도 모든 남자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사무를 봤고 전철 지하철 택시에서도 누구나 담배를 필수 있었다는 걸 지금 세대는 충격으로 받아 드리겠지만 당시엔 너무도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그런 문화의 변화에 따른 인식의 관점에서 조선 초기에는 짧은 저고리가 기방의 전유물이었지만 차츰 짧은 저고리는 널리 유행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은 유부녀들에게는 자신의 다산을 자랑하는 방법으로 가슴을 내어 놓고 다닐 수 있었다. 또한 공공연하게 궁에서나 사대부가에서 동성연애도 존재했다. 한 남자만을 바라봐야 하는 독수공방 하는 억압된 젊은 여성에게 하나의 해결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지금과 차이가 있는 것은 현재 널리 유행하는 배꼽티나 탱크톱처럼 잘록한 허리나 배꼽을 자랑스럽게 내어 놓는 것 자체가 조선시대로서는 오히려 정숙치 못한 음란한 행위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몇 가지 흥미로운 비교를 해보자.
조선시대 관아의 고급 관료에게는 따로 합방을 하거나 술접대를 하는 관기가 존재했다는 것도 현대의 관점에서는 처벌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직자로서나 한집의 가장으로서 허용되기 힘든 일임에도 조선시대에는 합법적으로 성의 문란함을 허용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의 시장이나 군수가 있는 시청 군청에 기쁨조 역할을 담당하는 수행원이나 비서실이 존재한다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또한 지금은 엄격히 규제되고 불법으로 치부되는 기방 주점의 접대행위나 홍등가 또는 매춘행위를 하던 사당패가 조선시대에서는 합법적인 상업행위이자 문화였다는 건 아이러니 하다. 기방의 기생이나 주막의 주모들이 접대 행위를 할 때 가슴을 들어내놓고 있다는 건 현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규제와 처벌의 대상이겠지만 조선에서는 하나의 문화적 해방구로 존재했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현대 사회가 문명화되었다고 해서 현대가 과거보다 마냥 근엄하고 정숙한 사회가 아니듯 명과 암이 존재하는 건 시대를 초월하지 않던가. 조선시대 부와 명성을 가지고 유교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한 사대부들은 이슬람 히잡 문화를 능가할 정도로 정조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백성들과 여자들이 꽁꽁 싸매고 다니던 것도 아니었다. 

 

 

최근 역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이런 가슴 노출하는 문화가 일제의 왜곡과 날조로 만들어진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지도층인 사대부 문화도 존재했지만 탐관오리아 양반들의 수탈로 짐승처럼 헐벗고 당장 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어 도덕이니 예를 따르거나 의복을 정갈하고 단정히 입는데 신경슬 여유도 없는 삶을 살았던 천민 문화도 존재했고 그 중간자적 문화인 양민 문화도 존재했고 엄격한 신분제로 인해 부와 명성 지식 모두를 독점해서 세련되고 도덕적인 문화를 만든 양반 문화도 존재했지만 그 양반문화 조차도 동방예의 지국 선비라는 이미지와 다른 이면의 사회 문화도 존재했다고 생각해야 옳다. 세상 모든것에 완벽함이란 없다. 흑과 암은 존재한다. 

 

일제는 전 국민이 벗고 다닌 듯 호도하여 우리 문화를 깎아 내렸지만 그렇다고 너무 국수적인 방식으로 우리 문화에서 천민 문화와  저속해 보일지라도 존재했던 양민의 문화자체를 부정하고 마냥 좋은 면만 있었다고 우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문화는 변화하는 것이며 성의 관점도 변화한다. 그것들에는 당시의 역사적 사회상과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 사상이 모두 반영되고 나타난 우리 조상의 자연스러운 삶의 문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걸 현재의 잣대를 들이밀어 마냥 부끄럽다거나 자랑스럽다거나 하는 식으로 흑백의 논리로 단편적 판단을 해선 안된다. 역사에 사적인 생각과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아닌 소설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도 흘러가듯 변화하는 성에 대한 관점과 문화를 보며 현재의 성의 변화와 문화사회를 평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현대의 여성의 노출에 대해서 마냥 과거 동방예의 지국이 어떻다거나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외설이라고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언제부터 노출이 범죄가 된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그리 흥분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가리고 숨기기 때문에 성은 더욱 외설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숨김의 미학이라고 말하듯 외국 영화처럼 홀랑 벗어버리는 것보다 보일 듯 말듯한 숨기려는 것이 정신학적으로 더욱 성을 자극한다고 한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탐하듯 강한 인간 특유의 호기심 탓인지 누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리고 숨긴 것들에 대해  장애물을 넘어서  맛보고 만지고 알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홀랑 벗고 다니자거나  과거처럼 무지성하게 성에 대한 자유를 부여하자는 건 아니다.

각 시대마다 지켜져야 할 규범과 가치는 다르기 마련이니 말이다. 단지 우리의 여성들의 노출이 막연하게 비하당하거나 악의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출은 일종의 자기표현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육체적 억압에 대한 해방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주자는 뜻이다.

꾸미거나 가꾸는 것이 힘든 만큼 그 결과물을 남에게 자랑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여성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찬미의 대상이니 너무 억압하지 말자. 이것도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범주안에 있는 문제들이니까.....

쉬어가는 글이니 만큼 재미 삼아 읽어주세요~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요. 재미있으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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