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00년 앞서 총을 도입하고도 일본에게 정복당한 류큐 왕국의 몰락 100년 앞서 총을 도입하고도 일본에게 정복당한 류큐 왕국의 몰락일본에 총이 전래된 것보다 약 백년 일찍, 류큐에는 총의 근원이 된 화기가 중국에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류큐에서는 '히야'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총이라고 하면, 전국시대에 다네가시마에 전래되었죠. 화승총이 유명합니다만, 사실, 그 이전부터 초기의 총은, 류큐에서도 존재가 확인되고 있습니다.당시의 중국은, 이미 칼과 창의 싸움에서 포를 사용한 화력의 전쟁으로 이행하고 있어, 이전에는 열세였던 기마민족에 대해, 방어전에서 우위에 서 있었습니다.원거리 화약무기는 적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되기에 전투로 인한 피해와 손해를 작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방의 기마 민족들이나 해적들의 침입에 좀더 쉽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명과 밀접한 외교를 해.. 2025. 9. 4. 조선의 ‘미숙한 중립외교’가 부른 참상: 명–청 사이에서 타이밍을 놓친 대가 조선의 ‘미숙한 중립외교’가 부른 참상: 명–청 사이에서 타이밍을 놓친 대가임진왜란 직후 조선 외교의 핵심 과제는 ‘명(明)과 급부상하던 후금(後金, 뒤의 청)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였습니다. 광해군은 명의 쇠퇴와 여진의 급성장을 읽고, 두 강자 사이에서 직접충돌을 피하는 신중한 중립 외교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사림·서인의 ‘의리’ 명분론과 충돌했고, 즉위 정통성 문제까지 겹치며 내부 갈등을 키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인조반정 이후 정권이 친명 배금으로 급선회하면서, 조선은 전략적 일관성을 잃고 전쟁 국면에서 판단과 준비의 타이밍을 놓치게 됩니다. 관련 유튜브https://youtube.com/shorts/8ramtzGsA0A?si=6UI6miuPDcUYbOi- 조선의 미숙한 중립외교.. 2025. 9. 2. 중국의 오늘이 있게한 덩샤오핑의 100년을 내다 본 충고 중국의 오늘이 있게한 덩샤오핑의 100년을 내다 본 충고중국의 오늘을 만든 이야기를 아시나요? “1972년, 닉슨의 미·중 수교와 냉전 균형 외교 정책은 중국의 문을 열었고, 이는 중국 개혁의 단초가 됐습니다.”“이후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선전, 샤먼 등에 특별경제구역 설립하여 외국 자본과 기술을 적극 유치했죠.”그는 살아생전 유언처럼 이 말을 남깁니다. "조금 힘이 강해졌다고 후손들이 경솔하게 굴까 나는 두렵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이 유언을 남긴다. 다른 나라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잘 지내라! 100년을 조용히 웅크리고 칼을 예리하게 갈아라.그렇게 기다린다면 중국은 다시 한 번 과거의 영광과 번영을 되찾을 기회가 반드시 올것이고 그 때가 바로 중국이 세계 .. 2025. 9. 1. 한국에만 존재하는 반지하 주거지의 유래 한국에만 존재하는 반지하 주거지의 유래한국 영화 기생충을 통해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주거 형태, 바로 ‘반지하’입니다. 외국에도 ‘Basement’라는 공간이 있지만, 이는 대부분 주택에 딸린 창고나 보조 공간일 뿐 주거용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반지하는 그 개념부터 다릅니다.반지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1960년대 냉전 시기까지 이어집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남침과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대통령 지시로 건물마다 지하 대피소를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처음부터 주거 공간이 아닌, 서울을 거대한 벙커와 미로 같은 방어 진지로 만들려는 전략적 시설이었던 셈입니다.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 경제 성장과 더불어 서울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심각한 주택난이 발생합니다. 이때 정부는 고육지책으로.. 2025. 8. 31. 이전 1 2 3 4 ··· 13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