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1883 6화~10화 : 지도로 보는 제임스 이동 경로와 등장인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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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1883 6화~10화 : 지도로 보는 제임스 이동 경로와 등장인물 정리

by GhostJiN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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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1883  6화~10화 : 지도로 보는 제임스 이동 경로와 등장인물 정리

 

6화부터 10화까지의 내용은 이 드라마를 보실 분들에게 스포가 될지도 몰라 자세한 스토리 관련해서는 적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드라마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전반적인 제임스 더튼과 셰어 브레넌의 지도상 이동 경로와 에피소드마다 언급되는 지명이나 캐러번의 진행 방향 그리고 이런저런 드라마의 정보를 정리해서 올려 두겠습니다.

 

 

6화 내용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레드강을 넘어 오클라오마 주를 지나는 제임스 캐러번 행렬이 토네이도를 마주하는 부분입니다. 인디애나 주, 텍사스 주 북부, 오클라호마 주, 캔자스 주, 네브래스카 주, 사우스다코타 주와 아이오와 주가 있는 중서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데, 미국에서도 이 지역은 토네이도 앨리'''(Tornado Alley)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최근에는 미국 중서부뿐 아니라 동부와 남부도 점차 토네이도의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토마스가 새로 영입할 요리사 쿠키에 말하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사우스패스(South Pass)통과해서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부근에 도착하면 서쪽으로 갈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리사는 겨울을 못 버틸 거라 염려합니다. 그리고 캔자스(kansas)에는 먹을만한게 충분하지 않기에 소떼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셰어의 캐러번 그룹은 50마리의 소떼를 함께 데리고 가는 중 입다. 자신의 취사마차를 가진 요리사 쿠키는 한달에 150달러의 급여와 함께 포틀랜드 도착 시 집까지 가는 운임 그리고 여행 중 식료품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일을 하기로 합의합니다. 이 당시 미국 평균 연봉은 300달러라고 하니 남들 6개월치 봉급을 한 달 만에 받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편도 티켓 승차권이 65달러인데 일을 마친 후 마차 포함 수화물까지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을 준다니 나쁘지 않은 거래입니다.

 

그림을 클릭하신후 Ctrl + 마우스 휠을 굴리면 사진을 더 선명하게 확대 축소 하실수 있습니다.

 

도안스(Doan's crossing)는 와이오밍(Wyoning) 가기 전 마지막 식료품 거래가 가능한 교역소이기에 쿠키는 미리 600달러치 식료품을 구입해서 비축해 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클라오마, 캔자스, 네부래스카에는 아직 교역소가 생길 정도로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한 듯합니다.

 

여기서도 애빌린(Abilene)이란 도시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요리사의 말로는 애빌린은 창녀와 살인자만 득실대는 위험한 곳이라서 식료품을 사기위해 방문하긴 부적절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그 근처도 안 가겠다고 못 박습니다. 그리고 카우보이 웨이드와 사망한 에니스(Ennis)를 대신해 영입된 콜튼(Colton)의 대화에서도 애빌린은 도박과 술 여자로 재산을 탕진할 수밖에 없는 곳의 로 묘사 됩니다. 그럼 애빌린은 도대체 어떤 도시일까요?

 

이 드라마가 애빌린 북쪽에 위치한 거스리(Guthrie)의 6666 Ranch 근처에서 촬영되었다는건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옐로스톤의 프리퀠로 제작되리라 예상되는 6666 목장에 대한 이야기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 도시가 바로 애빌린이기에 1883년 당시 이 도시의 초기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좌측 현재의 애빌린 사진 우측은 과거 애빌린의 번성을 이룬 철도역과 당시 마을 전경

 

실제 텍사스주 애빌린은 인근 육우 사육자들이 가축을 테일러 카운티 밖으로 운송하는 데 사용했던 텍사스 및 태평양 철도 (Texas & Pacific Railway) 노선이 개통되고 나서 서부 텍사스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의 교두보 역활을 해 왔습니다. 이 기차 노선 덕분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이 도시는 1881년에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 엄청난 경제적 호황을 이뤘다고 합니다. 근 100년 가까이 번성한 이 도시는 1967년 철도가 운행이 중단되면서 도시가 쇠퇴했습니다. 현재 시 당국에서 각종 역사적 건물들을 리노베이션 하는 등 관광도시로 탈바꿈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 그렇게도 흥청 대던 열망의 도시는 현재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로 평일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한적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평온한 도시로 변해 있다고 합니다.

 

6화 부분에 엘사가 레드강을 건너면서 인디언 영토(indian territory)로 들어간다고 표현한는데 현제도 오클라호마를 인디언 영토라고 부르는 이유는 오클라호마 주민 12명 중  1명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는 통계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왜 유독 오클라호마주의 원주민 비중이 미국의 다른 어떤 주보다 높을까?

 

그 이유는 역사에 있습니다. 1814년부터 1824년까지 당시 미군 사령관이었던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은 백인 미국민들이 미국 서쪽에 있는 더 많은 부지를 원했던 열망을 등에 업고 인디언 소유 땅을 거래하는 조약 협상을 주도하게 됩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조지아, 테네시, 미시시피, 켄터키, 노스캐롤라이나의 일부와 앨라배마, 플로리다의 4분의 3을 획득했습니다.

 

당시 원주민 부족 지도자들은 더이상의 막강한 백인과의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토지 일부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조약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1823년에 처참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 대법원은 인디언들이 미국 국경 내의 토지에 대해 어떠한 소유권도 가질 수 없다고 판결해 버리게 됩니다.

 

미국 남동부의 일부 부족은 대법원 판결 이후 자발적으로 서쪽으로 이주했고 또다른 일부는 백인 정착민과 동화하거나 협력하려고 시도했지만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이 결정에 분노하여  저항했고 심지어 전쟁을 통해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830년에 미의회는 미국이 미시시피 강 서쪽의 땅을 부족들을 위해 할당할 수 있도록 승인하는 인디언 이주법을 통과시킵니다. 1834년에 통과된 이 법안으로 인해 오클라호마를 포함한 서부는 인디언 영토 (indian territory) 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원주민들의 강제 이주 '눈물이 길'

 

이 법은 미국 정부가 북부와 동부 곳곳에서 여전히 부족의 땅을  주장하며 무력 저항을 하고 있는  부족들을 대규모 강제 이주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게 됩니다. 5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무려 60개 이상의 부족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떠나 자의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백인들에 의해 인디언 영토로 명명된 구역 안으로 이주당하게 됩니다.

 

가장 악명 높은 강제 이주 중 하나는 총검을 휘두르는 미군이 조지아에 있는 수천 명의 체로키족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낸 사건입니다. "눈물의 길"로 알려진 1,200마일의 험난한 여행 중에 최소 4,000명의 체로키족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백인들에 의해 정해진 이 인디언 영토라는 약속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철도의 성장으로 인해 미시시피 서부에 더 많은 백인 정착민이 생겨났고 미국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르자 의회는 이주 정착민들을 위해 이 인디언 영토의 상당 부분을 개방해 버립니다.

 

심지어 20세기 초에는 인디언 영토 자체가 폐지되어 버립니다. 나머지 토지는 부족 단위에서 개별 인디언 단위로 조각내서 재할당해 버립니다. 이로 인해 오클라호마주 입장에서는 1907년에 오클라호마 땅 안의 모든 주권을 완벽하게 획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인디언 부족의 정신과 소유는 흩어져 버리게 됩니다.

 

오늘날 오클라호마에는 연방 정부가 인정한 30개 이상의 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런 오클라호마의 인디언 영토내 자치 정부를 가졌던 원주민들은 미국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기 전에 미당국과 부족 지도자들은 부족 정부가 해산된다는 데 동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들은 자신들의 땅에 대해 제한된 주권을 계속 보유하고는 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로 인해 아직도 미국인들은 오크라호마를 인디언의 영토 혹은 인디언 준주라고 부릅니다.

 

과거 업자들의 남획과 정부 정책에 의해 바이슨 뼈로 쌓아 올린 뼈무덤과 현재 동물보호 구역에서 무사히 자라는 바이슨들

 

참고로 이 오클라호마 땅에 처음 엘사 일행이 진입 할 당시 충격적인 장면이 바로 드넓은 들판에 수많은 동물 사체들이 흩어져 있던 것입니다. 이 뼈들은 미국 토착 야생소인 바이슨의 뼈들로 실제 미국 군대와 가죽 사냥꾼들이 인디언 말살을 위해 인디언들의 주 수입원이며 식품공급처인 바이슨 무리를 멸종시키는 정책에 의해 팔천만 마리의 바이슨 떼가 사라졌고 겨우 수백 마리만 남았을 정도로 야생 동물을 인위적으로 단시간에 멸종 직전까지 몰고 간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현재는 그나마 꾸준히 보존에 힘쓰면서 수십만 마리로 늘었다고 합니다.

 

마가렛이 엘사의  낡아서 헤진 바지를 더블스티치 바느질 법으로 꼬메는 장면도 나오는데 두줄로 기우는 방식으로 단단히 꼬메는 바느질 법이더군요... 남자라 이런 건 첨 알게 되었습니다.

 

토네이도로 마차를 상당수 잃은 일행의  이후 여정을 암시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래러미 (Larami) 상황은 아라파호족 라코타족이 도둑들의 약탈과 미국 정부의 협정에 대한 거짓말에 불만이 커져 정세가 불안정 상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마차를 너무 많이 잃었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걸어서 가야 하기에 북부에 도착하면 겨울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코만치 원주민인 샘과 셰어 브레넌의 오랜 지인 찰리는 오리건으로의 여정을 포기하고 비교적 안정된 콜로라도 덴버로(Denver) 가라고 권합니다.

 

덴버는 최초 금광과 은광같은 광산으로 급성장한 도시지만 이후 금광이 고갈된 후에도 도시의 경제는 철도, 도매 무역, 제조업, 식품 가공, 성장하는 농업 및 목장 배후지에 대한 서비스에 뿌리를 둔 보다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함으로써 크게 성장합니다. 1870년에서 1890년 사이에 제조업 생산량은 60만 달러에서 4천만 달러로 급증했고 인구는 20배 증가하여 107,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1890년까지 덴버는 미국에서 26번째로 큰 도시이자 미시시피 강 서쪽에서 5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 이 시기의 급속한 성장은 백만장자와 그들의 저택, 그리고 빈곤과 범죄를 불러일으킨걸로도 유명한 도시입니다. 그렇기에 샘과 찰리는 차라리 상대적으로 안전한 큰 도시인 덴버로 가라고 말한 듯합니다. 

 

이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옥신 각신 할 때  마가렛 역시 딸의 새로운 연인인 코만치 샘에 대해 옥신 각신 하게 됩니다.  이때 마가렛은 가거 남북전쟁 패배 후 제임스가 미연방 포로수용소에 붙잡혀 있는 3년간 몰락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소작농 일을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부군 대위출신이라면 남부에서도 엘리트인 제임스는 분명 대농장의 지주가문일 텐데 아마 남부의 집안 남자들이 모두 전쟁에서 사망하고 전쟁에서 패하다 보니 점차 가문은 몰락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일가족 모두를 기차를 태워 텍사스 포트워스로 올정도면 여전히 재력이 꽤 있었을 듯합니다.  당시 평균 미국인들 연간 수입이 300달러이고 기차티켓이 65달러인데 아내, 아들, 딸, 여동생, 그리고 조카까지 5명이 모두 기차를 타고 옵니다.  웬만한 미국인 1년 치 수입을 한 번에 쓸 정도니 재력이 나쁘진 않은 듯합니다.

 

비치타 마운틴 (Wichita Mountains)

 

엘사의 새로운 연인이자 남편인 샘은 오클라호마 인디언 영토 내에 자신의 땅은 쿠아나 파커와 함께 있다고 말하면서 비치타 마운틴(Wichita Mountains) 남쪽에 엘사와 함께 살 집을 지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비치타 마운틴스 내셔널 야생동물보호지역으로 보호될 정도로 잘 보존된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더군요. 엘사는 일단 가족과 오리건으로 가족과 함께 동행한 후 6월쯤 오클라호마로 샘을 보러 오기로 약속하면서 헤어집니다. 엘사가 샘과 이곳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엘사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길 바랍니다.

 

우여곡절 끝에 제임스는 이 유럽인 이주자 그룹의 호송꾼 리더가 됩니다. 하지만 래러미 지역의 혼란이 있었다고 말했듯 결국 이곳에 도착한 제임스 일행은 큰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라코타족 캠프가 말도둑들에게 습격당해 있었고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파괴된 그들의 캠프를 둘러보다 자신의 흔적을 사건 현장에 남겨 증거를 오염 시켜 버린걸 뒤늦게 눈치 채게 됩니다. 오해를 풀지 않고 지나간다면 자칫 라코타족과 같은 원주민들이 있는 쇼쇼니(Shoshoni), 네즈퍼스(Nezperce) , 블랙풋(Blackfoot)을 지나야 하는데 이번일로 일대 모든 부족들이 라코타족 캠프 습격에 대한 소문을 돌게 되면 인근을 지나는 모든 백인 마차를 습격 할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결국  이 도둑들을 직접 잡아서 라코타족 부족에게  넘김으로써 오해를 풀기 위해 제임스와 셰어 그리고 톰은 말도둑들 뒤를 쫓게 됩니다. 

 

 

하지만 당황한 이주민 무리에게 쿠키는 곧 라코타족이 온다면 무슨 변명을 해도 우리 모두를 죽일 거라고 말하면서 6시간 거리에 군인들이 있는 캐스퍼 요새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부시대 마차의 평균 속도가 시속 8km였다고 하니 아마도 이 지점은 포트 캐스퍼의 남동쪽 48km 지점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차 자국을 보고 라코타족은 복수를 위해 쫓아가게 되고 결국 얼마 가지 못해서 이주민 그룹은 대 참사를 겪게 됩니다. 이때 엘사는 치명상을 입습니다. 

 

반면 캠프 습격자를 쫓아간 제임스는 그들이 CY목장주인 캐리가 주도해서 와이오밍주의 목장주들이 결집시겨 설립한  민간 자치 단체인 가축협회 보안관임을 알고 당황하지만  이들이 단지 인디언들을 인종적으로 증오하고 그들의 땅과 가축을 뺏기 위해 고의로 살해를 저지른 것에 분노해 그들 모두를 응징합니다. 

 

이것은 드라마 옐로우스톤에 나오는 존더튼의 중요한 정치적 요소인 가축협회(Livery stock agent)의  전신을 볼 수 있는 좋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마 제임스 더튼은 이때 얻은 정보를 통해 몬타나에도 가축협회를 창립하게 되었을 겁니다. 

 

이후 라코타족과의 오해는 풀렸지만 포트 캐스퍼에 들린 제임스는 이곳 책임자인 군의관에게서도 엘사는 다시 되돌리기 힘든 상처라는 소견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 역시 와이오밍 가축협회의 회장인 캐리의 CY목장 소유임을 듣게 되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음을 판단합니다. 그는 엘사가 스스로 묻힐 장소를 찾기 위해 몬타나로 향합니다. 그리고 딸 엘사가 뭍힐 장소가 바로 자신의 가문이 머물 장소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몬태나로 가는 걸 거절하고 자신들끼리 계속해서 서부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이로써 이주민 캐러번 호송의 계약은 모두 파기됩니다. 다만 셰어와 요셉 부부 그리고 톰의 연인인 집시여인만 더튼 일행을 따라 겨울을 나기 위해 몬테나 보즈먼을 향합니다. 이 여정에서 몬테나의 인디언 추장은 제임스가 딸이 묻힐 땅을 찾는다는 말에 자신의 조상들이 대대로 지내온 땅 중 제임스에게 딱 어울리는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땅으로 가서 7대까지 기거하라고 일러줍니다. 그 7대가 지나면 다시 자신의 부족이 일어나서 그 땅을 되찾아 올 거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그리고 혹시 자신의 자손들이 그 땅에 사냥을 갔을 때 홀대 말고 사냥할 수 있도록 후대해주길 요청합니다. 이 모든 것에 제임스는 동의합니다.   

 

제임스에게 온 노추장의 후손들은 추장의 유해를 조상들의 땅이자 제임스의 땅에 묻길 원한다. 제임스는 그들에게 숫소와 함께 호의를 베푼다.

 

지금까지 옐로 스톤과 1883을 모두 시청한 분들도 아시겠지만 이 모든 일은 모두 일어납니다.   옐로우스톤 전 시리즈 자체가 이미 이 추장의 부족이 일어나 자신들의 땅을 백인들로 부터 되찾기 위한 시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옐로우 스톤 시즌4에서는 혹독한 겨울 한부족을 이끌고 나타난 추장이 제임스 더튼에게 아버지가 태어난 이땅에 아버지를 묻어 드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분간 겨울을 날수있도록 요청합니다. 이에 제임스는 충분히 머물도록 허락하고 그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숫소 한마리를 남기고 떠납니다. 아마 과거 제임스에게 자신이 나고 자라고 사냥했던 땅으로 가라고 했던 그 나이  많은 추장의 후손들인듯 합니다.  그리고 제임스는 노추장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그들에게 호의를 다합니다.  제임스가 이때 이들에게 조상의 땅을 되찾으러 왔냐고 물으며 난 이땅을 뺏은게 아니라는 의미는 아마 그의 선조로 부터 7대까지 기거 하도록 허락 받았다는 의미도 있었을 겁니다.  

 

 

근데 옐로우 스톤 시즌4 에피소드2에 보면 에퀴티에서 대규모 건설을 하던 중 색칠된 들소 바이슨 뼈와 함께 부장품과 유골이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혹시 이들 후손이 아무도 모르게 안장하길 바라던 노추장의 유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은 제임스 더튼도 모르는 장소를 찾아서 아버지를 조상들의 땅에 묻어 드리려 했었으니 그곳이 제임스 더튼 땅 안인지 경계였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다 해도 이들의 땅이었으니 그들 선조 중 누군가의 유골이었을 겁니다.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인디언들의 슬픈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분명 멋지고 아름다운 서부로의 여행을 봤는데 남는 건 아련한 인디언의 역사더군요. 이상으로 미국 서부 드라마 1883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후 시즌2가 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기대가 됩니다.

 

마무리는 항상 그렇듯 등장인물들 총정리 표입니다.  드라마 감상에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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