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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생각하기

[생각] 왜 우린 은둔형 외톨이를 강요받는가?

by GhostJiN 2009.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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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불경기. 해고. 파산 . 불신. 경멸. 거짓. 배신......한국에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고 있다.
예전 한국의 은툰형 외톨이는 사회변화에 부적응하거나 사회에 좌절이나 상처로 인해 사회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자신의 방 안으로 숨어버리는 증상을 일컬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만의 증상으로 끝나고 있는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사회현상으로 보기에 너무 현대 생활성향이 단절과 아집 그리고 은둔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조장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데 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미친것을 모르는 것이 미친 사람이라고 본다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은둔형 생활은 그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 아닌지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누군가는 분명 이러한 의문이 의아해 할수도 있을 거라 믿는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삶을 갈아먹고 있고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둡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채 우린 그런 늪과 같은 삶에 허우적 대고 있는지 모를 일이기에 이 글을 적어본다. 

과거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층건물이 푸르른 하늘을 뒤덮기 이전의 세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속엔 아직 해가 뜨기 전의 파란 새벽을 깨우던 재치국장수의 아련한 목소리와 한가로운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타고 창을 넘어 들려오던 금빛 생선장수의 시원스러운 목소리 그리고 추운 달빛을 가르며 겨울밤 구성진 찹쌀떡 장수의 그 정겨운 목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이럴 때면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나와 물건을 보고 서로의 이야기로 마을이 시끌벅적 사람 사는 정겨움이 물씬 묻어났다. 

 

재래시장에서는 장보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그저 눈요기거리로 사람들 소식을 듣기 위해 구경 나오는 사람들로 분주함을 느꼈었다. 그러던 당연한듯한 모습들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기억에서 차츰 사라져 갔고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대신 단조롭고 단절된 고독한 쇼핑과 장보기 누군가와 약속 없이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우리의 일상엔 내 이웃과의 우연한 만남이나 대화란 없다.

왜일까? 왜 그토록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 걸까? 이젠 시내 쇼핑가를 가지 않는 이상 주택가에선 을시년 스럽게 사람이 없는 시간이 늘어가고 사람들이 서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여전히 아직 그런 모습을 간직한 지역도 있지만 이미 많은 도시가 서로를 알기를 거부하며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 당장 집 앞으로 나가보면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그저 자신의 길로 가기 바쁘고 주위에 사람들을 보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자신의 집에서 티비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마주하며 홈쇼핑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사고 전화를 통해 장을 봄으로써 더 이상 집 밖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과 함께 인간의 정을 맞바꾼 것은 아닐까? 이웃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체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그저 사생활 차원이 아닌 사회성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정신적 장애라고 생각지 않는가? 

우린 왜 우리의 삶이 타인의 삶과 별개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이 번잡한 도시에서 조차 무인도에서의 고독한 삶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일까? 분명 우리의 삶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왜 우리는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인간은 전화와 티비를 발명함으로써 더 이상 정보를 이웃에게 얻을 필요가 없이 그저 정보에 대한 가십 할 상대로써 이웃이 필요해졌고 인터넷과 홈쇼핑이 도입됨으로써 더 이상 가십을 나눌 대상이 이웃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채팅과 텍스트상으로 인터넷에 자신의 관심사와 생각을 공유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젠 이웃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앞으로는 뭐가 나올까? 그리고 이젠 무엇이 버려지고 잊힐까? 가족의 붕괴는 이미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더 이상 가족이 한 밥상 앞에서 모이는 일 따위는 필요가 없어졌다.

인간은 자신이 최소한으로 생활할수있는 상황에 자신을 맞춰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은둔형 외톨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증상이 조금 더 심각할 뿐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자체가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부적응이며 대인관계의 장애증상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우린 현대 사회에서 무한 경쟁속에서 치열하게 서로와 비교당하고 끊임없이 서로와 싸워나갈 뿐 아니라. 돈이 아니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해 버렸다. 내가 더 많은 부를 소유하지 못함으로써 타인의 부로 인해 상대적 빈민이 되어버리는 이러한 체제 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을 불안해하며 아파하고 시기질투한다.
 
지금 당장 집앞에 나서면 이미 돈의 카운트가 시작된다. 교통비 식비 입장료 통화료 잡비 모든 것이 돈으로 시작해서 집안으로 다시 들어서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돈의 지출은 멈추지 않고 적자를 나타낸다.

또한 현대의 집단생활화와 대량유통으로 인해 수업이 많은 질병에 노출됨으로써 인간상호의 접촉에 잠재적 두려움을 지우지 못하면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는 밖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직장일 이외에 우리는 밖에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대신 집안에서 마냥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가 겨우 찾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또다시 채널을 돌리고.... 인터넷을 끝없이 헤매며 방황하고..... 그것이 끝이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는데 이미 우리는 어색하고 생소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언제부터 인간은 철저히 홀로 외로운 삶은 살게 되었을까?
인터넷이 번창한 이유는 수많은 정보의 공유 이외에도 인간의 외로움을 대신 채워주는 매체로써 급속히 퍼져나갔지만 결국은 외로움을 고스란히 다시 되돌려 받고 있다. 아니...오히려 공허함까지 덤으로 되돌려 받았다. 허무하고 공허한 인터넷상의 외침 그것이 현실이다. 현대화 기계화 문명화를 외치지만 그것의 실체는 인간의 끝없는 소외와 고립화 그리고 자본중심의 집중화.... 바로 그것이 전부였다.  그로 인해 더욱 인간은 생각의 주체로서 중심이 아닌 외부자로 전락한 체 돈이 중심이 되어버린 주객전도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앞으로 더욱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지도...

그리고 더이상 인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금속이고 종이 조각인 돈이 인간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이상한 현실....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쌀과 먹거리가 있음에도 가격 형성을 맞추기 위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곡식을 폐기 처분하며 논밭을 갈아엎어버리는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쌀을 구할 수도 없어 많은 생명이 기아로 허덕이다 결국 아스라이 작은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다.

너무 웃긴 일이 아닌가? 이모든것이 돈이 중심이며 네트워크라는 기계 문명의 결정판이 만들고 있는 인간사임을 우리는 힘없이 바라볼 뿐이다.

정말 기계문명과 인터넷 통신 그러한 인류의 자랑거리가 없다면 인간은 더 이상 살 수 없을까? 난 몇 달 전 핸드폰을 해지했다. 너무 많은 정보와 광고로 인해 그리고 왠지 모를 기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처음은 왠지 불편했지만 이젠 오히려 더욱 자유롭다. 우리는 예전 핸드폰이 없이도 아주 잘살았다.  더욱이 서로 연락하기 위해 더 많은 전화번호를 자연스럽게 기억했었다. 조금은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쉽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리움과 애틋함이 있었고 한번 만나거나 통화할 때는 너무도 반가운 정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언제든 연락할 수 있기에 연락을 더 하지 않게 되거나 너무 자주 연락해서 형식적이거나 필요 없는 만남으로써 순간순간의 기분에 따라 생각 없이 행동한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이러한 쉽게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는 인간관계에 정이 더 이상 끼어들 자리는 없게 되었다. 주체할 수도 없는 인맥 속에서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없는가? 그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연락하고 연락받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직접 볼 필요 없이 안부전화 한 번으로 쉽게 끝나는 가족 관계는 없는가?
우리의 문화의 끝은 어떤 모습 일까? 우리의 인간관계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나는 아직도 내 어린 시절 사람 정이 넘실대던 그리고 서로 실랑이하며 북적대던 우리 마을의 모습을 기억한다. 지금 당장 거리로 나서면 동네 이웃이 서로 인사하며 반가이 어제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오랜만에 만난 벗을 얼싸안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던 어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참 너무도 그리운 모습이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활동영역을 자신의 방과 직장으로 한정시키고 사는 게 아닐까? 과거 조선시대보다 더 먼 곳을 단번에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생겼지만 현대인의 생활 반경은 단 1km 안팎 정도로 더욱 좁아졌다.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1km 이상 벗어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편한가? 그러한 편함에 행복한가?

난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난 너무도 편안하다. 하지만 행복하지도 기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들의 웃음과 기쁨에 목마르며 외롭고 쓸쓸하다. 한 달에 내 마음이 풍요로운 시간은 단 몇 시간 정도일 뿐이다. 내 인생에 인간으로서 행복한 시간이 문명의 이기로 인해 단 며칠정도로 줄었을까? 난 편해지고 싶지 않다. 땀 흘리고 피곤하더라도 함께 웃으며 정말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러한 행복이 필요하다. 아마도 나에겐 청소년 시기 이외에 그러한 시기는 군대에서 전우들과 힘겹게 생활하던 시절뿐일지도 모르겠다.


난 오늘도 사람들 속에 있지만 역시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들 속에서 외롭기만 하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우리 조금은 더 느리게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사람들의 정이 메말라 가지 않도록 하는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생각의 끈을 놓아버린 체 누군가가 해줄 거라 생각하고 있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닐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미뤄야 할 일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생각하며 행동해야만 할 일이지 않을까? 조금 덜 배부르더라도 안심하고 내 이웃과 내 가족의 웃음을 볼 수 있는 세상이길.....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되어주길...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오늘 하루도 기도하는 맘으로 살아본다.  

그리고 한걸음 더 집밖으로 나가 내 이웃을 만나보면 어떨까?
인터넷상의 사람보다 내 이웃이 더 가까운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니까...
그게 사람이 사는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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